경기변동 — 총수요·총공급과 안정화정책¶
2020년 2월, 한국 경제는 마치 급브레이크를 밟은 자동차처럼 멈춰 섰다. 코로나19라는 예기치 못한 충격 앞에서 사람들은 외출을 멈추었고, 식당과 여행업과 항공업의 매출은 하루아침에 절반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불과 몇 달 전까지 성장하던 경제가 갑자기 마이너스로 돌아섰고, 그해 2분기 한국의 실질 국내총생산(實質 國內總生産, real GDP)은 전 분기 대비 3.2% 감소하며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분기 성적을 기록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이 있다. 공장이 파괴된 것도, 기술이 사라진 것도, 노동자가 갑자기 무능해진 것도 아니었다.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은 그대로였는데 경제 전체의 생산량은 뚝 떨어졌다. 무엇이 이런 급락을 만들어 냈을까? 그리고 정부와 한국은행은 왜 곧바로 수십조 원의 지원금을 풀고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 수준인 0.5%까지 끌어내렸을까?
이 장은 바로 이런 질문, 즉 경제가 왜 좋았다 나빴다를 반복하는가, 그리고 정부와 중앙은행은 그 출렁임을 어떻게 다스릴 수 있는가에 답한다. 우리는 이미 앞선 장들에서 한 나라의 장기적 생활수준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생산성과 자본 축적, 기술 진보라는 사실을 배웠다. 그러나 장기의 성장 추세가 아무리 견고해도 경제는 그 추세선 위를 매끄럽게 미끄러지지 않고 위아래로 요동친다. 이 단기적 요동을 우리는 경기변동(景氣變動, business cycle) 이라 부른다. 이 장에서 소개하는 총수요-총공급 모형(總需要-總供給 模型, aggregate demand–aggregate supply model) 은 이 요동을 이해하고,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이라는 두 개의 조종간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설명하는 거시경제학의 핵심 도구다.
14.1 단기와 장기, 그리고 경기순환¶
왜 단기와 장기를 나누는가¶
거시경제학의 가장 중요한 방법론적 결단은 시간을 두 개의 지평으로 나누어 보는 것이다. 이 구분은 단순히 달력상의 길이가 아니라 가격이 얼마나 유연하게 움직이느냐에 관한 구분이다. 직관적으로 생각해 보자.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의 시급은 계약 기간 동안 고정되어 있고, 아파트 임대료는 대개 2년 단위로 정해지며, 대학 등록금은 학기 중에 바뀌지 않는다. 기업이 제품 카탈로그의 가격을 다시 인쇄하는 데에도 비용이 들고, 임금을 깎으면 노동자의 사기와 생산성이 떨어진다. 이렇게 가격과 임금이 곧바로 조정되지 못하고 한동안 묶여 있는 상태를 가격 경직성(價格 硬直性, price stickiness) 이라 부른다.
단기란 바로 이 가격 경직성이 지배하는 기간이다. 물가와 임금이 충분히 조정되지 못하기 때문에, 수요가 갑자기 늘거나 줄면 가격이 아니라 생산량과 고용이 먼저 반응한다. 코로나로 손님이 사라진 식당은 메뉴 값을 반값으로 낮추는 대신 문을 닫고 아르바이트생을 내보냈다. 이것이 단기의 세계다. 반대로 장기란 모든 가격과 임금이 시장 상황에 맞게 충분히 조정될 만큼 긴 기간을 뜻한다. 장기에는 임금과 물가가 신축적으로 움직여 시장을 청산시키므로, 경제의 생산량은 통화량이나 일시적 수요가 아니라 오직 생산요소의 양과 기술 수준, 즉 공급 측 능력에 의해 결정된다. 우리가 앞 장에서 배운 성장 이론은 바로 이 장기의 세계를 다룬 것이었다.
이 두 지평의 구분이 중요한 이유는, 같은 경제 현상이라도 단기냐 장기냐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해석되기 때문이다. 케인스(John Maynard Keynes)의 유명한 경구처럼 “장기에는 우리 모두 죽는다(In the long run we are all dead)”. 즉 장기 균형이 결국 회복된다는 사실만으로는, 지금 당장 실직하고 파산하는 사람들의 고통을 설명하거나 위로할 수 없다. 경기변동의 분석과 안정화정책의 존재 이유는 바로 이 단기의 세계에 있다.
경기순환의 네 국면¶
경제활동의 총체적 수준은 시간에 따라 팽창과 수축을 되풀이한다. 이 반복적 움직임의 한 주기를 우리는 네 국면으로 나눈다. 경제가 활발히 팽창하며 생산·고용·소득이 늘어나는 국면을 확장 또는 호황(擴張/好況, expansion) 이라 하고, 확장이 최고조에 이른 전환점을 정점(頂點, peak) 이라 한다. 정점을 지나 경제활동이 위축되고 생산과 고용이 줄어드는 국면이 수축 또는 침체(收縮/沈滯, recession) 이며, 수축이 바닥에 도달한 전환점이 저점(低點, trough) 이다. 저점을 지나면 다시 회복과 확장이 시작되어 새로운 순환이 열린다.
한 가지 유의할 점은 '침체’의 통상적 정의다. 언론에서는 흔히 실질 GDP가 두 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보이면 침체라고 말하지만, 이는 편의적 기준일 뿐 공식 정의는 아니다. 미국의 경우 전미경제연구소(NBER)라는 민간 기관이 생산·고용·소득·판매 등 여러 지표를 종합해 경기 전환점을 사후적으로 판정하며, 한국에서는 통계청이 '경기순환일’을 지정한다. 중요한 것은 침체가 단순히 성장이 느려지는 것이 아니라, 경제 전반에 걸쳐 상당한 폭으로, 상당 기간 동안, 광범위하게 활동이 위축되는 현상이라는 점이다.
경기변동의 정형화된 사실¶
수많은 나라의 오랜 경험을 관찰하면 경기변동에는 몇 가지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규칙성, 이른바 정형화된 사실(定型化된 事實, stylized facts) 이 있다. 첫째, 경기변동은 불규칙하고 예측하기 어렵다. 순환이라는 말이 마치 계절처럼 일정한 주기로 반복된다는 인상을 주지만, 실제 확장과 수축의 길이와 깊이는 매번 다르다. 둘째, 대부분의 거시경제 변수들이 함께 움직인다(comovement). 경기가 좋아지면 소비, 투자, 고용, 기업 이윤이 대체로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나빠지면 함께 나빠진다. 셋째, 변수마다 변동의 크기가 다르다. 특히 투자(投資, investment) 는 소비보다 훨씬 심하게 출렁인다. 경기가 나빠지면 가계는 밥은 계속 먹지만 기업은 공장 증설을 미루기 때문이다. 넷째, 산출이 줄면 실업률이 오른다. 이 마지막 규칙성은 뒤에서 다룰 오쿤의 법칙으로 정량화된다.
잠재산출과 GDP갭¶
경기가 좋다 나쁘다를 판단하려면 비교의 기준이 필요하다. 그 기준이 바로 잠재산출이다. 잠재산출이란 한 경제가 보유한 노동·자본·기술을 정상적으로, 즉 인플레이션을 가속시키지도 둔화시키지도 않는 지속 가능한 수준으로 가동했을 때 달성할 수 있는 산출량을 뜻한다. 이는 ‘최대’ 산출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정상’ 산출임에 유의해야 한다. 공장을 24시간 무리하게 돌리고 노동자에게 밤샘을 시키면 잠깐은 잠재산출을 넘을 수 있지만, 그런 과열은 오래 갈 수 없고 물가 상승을 부른다.
실제 산출이 잠재산출에서 얼마나 벗어나 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가 GDP갭 또는 산출갭(output gap)이다. 흔히 다음과 같이 백분율로 정의한다.
여기서 는 실제 실질 산출, 은 잠재산출이다. 이 값이 양(+)이면 경제가 잠재수준을 웃도는 인플레이션 갭(inflationary gap), 즉 과열 상태이고, 음(−)이면 잠재수준에 미달하는 경기침체 갭(recessionary gap) 상태다. 예컨대 잠재산출이 1,900조 원인데 실제 산출이 1,824조 원이라면 GDP갭은 로, 경제가 잠재력의 4%만큼을 놀리고 있다는 뜻이 된다. 이 유휴 자원이 곧 실업으로 나타나는 인적 자원의 낭비다. 안정화정책의 궁극적 목표는 이 GDP갭을 가능한 한 0에 가깝게 유지하는 것, 즉 경제를 잠재수준에서 안정적으로 운항시키는 것이다.
14.2 총수요-총공급 모형¶
이제 경기변동을 분석하는 핵심 도구인 총수요-총공급 모형을 세운다. 이 모형은 미시경제학의 수요-공급 그림과 겉모습이 닮았지만, 다루는 대상이 전혀 다르다는 점을 처음부터 분명히 해 두어야 한다. 미시의 수요-공급은 사과 하나, 노동 한 시간처럼 개별 시장에서 특정 재화의 가격과 거래량을 설명한다. 반면 총수요-총공급 모형의 가로축은 경제 전체의 실질 산출 , 세로축은 개별 재화의 값이 아니라 모든 재화의 평균적 물가수준 다. 즉 이 모형은 경제 전체의 산출량과 물가가 어떻게 함께 결정되는지를 그린다.
총수요곡선과 그 구성¶
총수요(總需要, aggregate demand) 는 주어진 물가수준에서 가계·기업·정부·해외 부문이 사려는 국내 재화와 서비스의 총량이다. 그 구성은 우리가 국민소득 항등식에서 이미 만난 지출의 네 항목과 같다.
여기서 는 소비(消費, consumption), 는 투자(投資, investment), 는 정부지출(政府支出, government spending), 는 순수출(純輸出, net exports)이다. 총수요곡선은 물가수준 와 이 총지출 사이의 관계를 보여 주며, 우하향(右下向) 한다. 즉 물가가 낮을수록 재화·서비스에 대한 수요량이 늘어난다.
총수요곡선이 우하향하는 이유는 개별 재화의 수요곡선과는 다른 세 가지 거시적 경로에서 나온다. 첫째는 자산효과(資産效果, wealth effect) 다. 물가가 내려가면 사람들이 보유한 현금과 예금의 실질 가치, 즉 그 돈으로 살 수 있는 재화의 양이 늘어난다. 더 부유해졌다고 느낀 가계는 소비 를 늘린다. 둘째는 이자율효과(利子率效果, interest-rate effect) 다. 물가가 내려가면 거래에 필요한 화폐량이 줄어 사람들이 여윳돈을 대출 시장에 공급하고, 이자율이 하락한다. 낮아진 이자율은 기업의 설비투자와 가계의 주택 구입을 촉진해 투자 를 늘린다. 셋째는 환율효과(換率效果, exchange-rate effect) 다. 국내 이자율이 내려가면 자본이 해외로 빠져나가며 원화가치가 하락(환율 상승)하고, 이는 우리 수출품을 값싸게, 수입품을 비싸게 만들어 순수출 를 늘린다. 이 세 경로가 합쳐져 물가 하락은 총수요량 증가로 이어진다.
단기총공급과 장기총공급¶
총공급(總供給, aggregate supply) 은 기업들이 각 물가수준에서 생산·판매하려는 재화·서비스의 총량이다. 여기서 앞서 다진 단기와 장기의 구분이 결정적 역할을 한다.
장기총공급곡선(長期總供給曲線, long-run aggregate supply, LRAS) 은 잠재산출 수준 에서 수직이다. 왜 수직일까? 장기에는 모든 가격과 임금이 신축적으로 조정되므로, 물가수준이 얼마이든 경제의 실질 생산능력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가가 두 배로 올라도 임금과 원자재값도 함께 두 배로 오르면 기업의 실질적 유인은 그대로이고, 경제는 여전히 노동·자본·기술이 허락하는 만큼만 생산한다. 즉 장기 산출은 화폐적 요인이 아니라 실물적 요인이 결정한다. 이를 화폐의 중립성(中立性, neutrality of money) 이라 한다.
단기총공급곡선(短期總供給曲線, short-run aggregate supply, SRAS) 은 이와 달리 우상향한다. 즉 단기에는 물가가 오를수록 기업이 생산을 늘린다. 그 이유는 다시 가격 경직성에 있다. 임금이 계약에 묶여 고정된 상태에서 제품 가격만 오르면, 기업 입장에서 판매 수입은 늘고 임금 비용은 그대로이므로 이윤 폭이 커진다. 이윤이 커지니 기업은 생산과 고용을 늘린다. 마찬가지로 일부 기업이 아직 가격을 바꾸지 못한 상태에서 전반적 물가가 오르면, 이들 기업의 상대가격이 싸 보여 주문이 몰리고 생산이 늘어난다. 결국 단기에는 물가와 산출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
아래 코드는 이 모형을 구체적 수식으로 구현한다. 총수요를 , 단기총공급을 , 그리고 잠재산출을 으로 설정하고, 부정적 수요충격이 경제를 어떻게 침체로 몰아넣는지를 그림으로 확인한다.
import numpy as np, pandas as pd
import matplotlib.pyplot as plt
import matplotlib.font_manager as fm
import logging, warnings
_av={f.name for f in fm.fontManager.ttflist}
for _f in ['Malgun Gothic','AppleGothic','NanumGothic','Noto Sans CJK KR','Noto Sans KR']:
if _f in _av: plt.rcParams['font.family']=_f; break
plt.rcParams['axes.unicode_minus']=False
plt.rcParams['mathtext.fontset']='dejavusans'
warnings.filterwarnings('ignore'); logging.getLogger('matplotlib').setLevel(logging.ERROR)
# AD: P=200-Y, 단기총공급 SRAS: P=20+0.8Y, 장기총공급 LRAS: 잠재산출 Yn=100
Y=np.linspace(50,150,200)
AD=200-Y; SRAS=20+0.8*Y; Yn=100
Y0=(200-20)/1.8; P0=200-Y0 # 최초 균형: Y=100, P=100 (완전고용)
AD2=170-Y # 부정적 수요충격(AD 좌측이동)
Y1=(170-20)/1.8; P1=170-Y1 # 새 단기균형(경기침체, Y<Yn)
print(f'최초 균형: Y={Y0:.0f}(=잠재산출), P={P0:.0f}')
print(f'수요충격 후 단기균형: Y={Y1:.1f}(<잠재산출 → 경기침체), P={P1:.1f}')
fig, ax=plt.subplots(figsize=(9,6.5))
ax.plot(Y,AD,color='#2563eb',lw=2.4,label='총수요 AD')
ax.plot(Y,AD2,color='#2563eb',lw=2,ls='--',label='총수요 AD₂ (수요 감소)')
ax.plot(Y,SRAS,color='#dc2626',lw=2.4,label='단기총공급 SRAS')
ax.axvline(Yn,color='#111827',lw=2,ls=':',label='장기총공급 LRAS (잠재산출)')
ax.plot(Y0,P0,'ko',ms=8); ax.plot(Y1,P1,'ks',ms=8)
ax.annotate('최초 균형',(Y0,P0),xytext=(8,8),textcoords='offset points',fontweight='bold')
ax.annotate('경기침체\n(Y<잠재산출)',(Y1,P1),xytext=(-60,-30),textcoords='offset points',color='#b91c1c',fontweight='bold')
ax.set_title('총수요-총공급(AD-AS) 모형: 부정적 수요충격과 경기침체',fontweight='bold')
ax.set_xlabel('실질 산출 Y'); ax.set_ylabel('물가수준 P'); ax.set_xlim(50,150); ax.set_ylim(60,140); ax.legend()
plt.tight_layout(); plt.show()최초 균형: Y=100(=잠재산출), P=100
수요충격 후 단기균형: Y=83.3(<잠재산출 → 경기침체), P=86.7

그림과 출력이 보여 주는 이야기를 단계별로 읽어 보자. 최초 균형은 총수요 와 단기총공급 가 만나는 점이다. 두 식을 같게 놓으면 , 즉 이 되어 , 을 얻는다. 이 균형산출 100은 마침 잠재산출 과 정확히 일치한다. 즉 최초 상태에서 경제는 과열도 침체도 아닌 완전고용 상태에서, 세 곡선(AD·SRAS·LRAS)이 한 점에서 만나는 이상적인 장기균형에 놓여 있다. 이것이 그림의 검은 원으로 표시된 '최초 균형’이다.
이제 부정적 수요충격이 발생한다. 코로나로 소비 심리가 얼어붙거나, 미래에 대한 비관으로 기업이 투자를 미루거나, 정부가 긴축에 나서면 총수요곡선 전체가 왼쪽으로 이동한다. 코드에서는 이를 에서 로, 즉 모든 물가수준에서 지출이 30만큼 줄어드는 것으로 표현했다. 새 균형은 에서 , 따라서 , 이다. 출력이 확인해 주듯 산출은 100에서 83.3으로 급감했고 물가도 100에서 86.7로 내렸다.
이 결과가 바로 경기침체(recession) 의 교과서적 모습이다. 그림에서 새 균형(검은 사각형)은 수직의 장기총공급선(잠재산출 100)보다 왼쪽에 있다. 즉 경제는 이제 자신의 잠재력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에서 작동하고 있다. GDP갭은 로, 경제가 잠재력의 약 6분의 1을 놀리고 있다는 뜻이다. 중요한 것은, 이 침체가 생산능력의 파괴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수요의 부족 때문에 발생했다는 점이다. 공장도 노동자도 그대로 있지만, 살 사람이 줄었기에 만들 이유가 사라진 것이다. 물가가 신축적이었다면 값이 충분히 내려 수요를 되살렸겠지만, 단기의 가격 경직성 때문에 조정이 산출과 고용의 감소라는 고통스러운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총수요를 떠받치는 안정화정책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14.3 총수요 관리: 재정정책과 통화정책¶
앞 절에서 우리는 총수요의 부족이 경기침체를 낳는 과정을 보았다. 그렇다면 정부와 중앙은행은 부족한 총수요를 어떻게 메울 수 있을까? 여기에는 두 개의 큰 조종간이 있다. 정부가 지출과 세금을 조절하는 재정정책(財政政策, fiscal policy) 과 중앙은행이 이자율과 통화량을 조절하는 통화정책(通貨政策, monetary policy) 이다.
재정정책과 승수효과¶
재정정책의 가장 직관적인 수단은 정부지출 를 늘리는 것이다. 정부가 도로를 건설하거나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면 총수요가 곧바로 늘어난다. 그런데 여기에는 처음 지출한 금액보다 국민소득이 더 크게 늘어나는 놀라운 증폭 메커니즘이 숨어 있다. 이것이 승수효과다.
논리를 따라가 보자. 정부가 건설사에 100억 원을 발주했다고 하자. 이 100억 원은 건설 노동자와 협력업체의 소득이 된다. 사람들은 이 새로 생긴 소득을 전부 저축하지 않고 일부를 소비한다. 소득 중 소비로 지출하는 비율을 한계소비성향(限界消費性向, marginal propensity to consume, MPC) 이라 하고 로 쓰자. 만약 이라면 이들은 60억 원을 다시 소비에 쓴다. 그 60억 원은 식당·상점 주인의 소득이 되고, 이들은 다시 그 60%인 36억 원을 지출한다. 이런 식으로 지출의 물결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총효과는 무한등비급수의 합이다.
일반적으로 정부지출이 만큼 늘 때 국민소득의 총증가는 다음과 같다.
여기서 를 정부지출 승수(government-spending multiplier) 라 부른다. 이면 승수는 이므로, 정부의 100억 원 지출이 국민소득을 250억 원이나 늘린다. 한계소비성향이 클수록 지출의 물결이 덜 새어 나가므로 승수는 커진다.
조세정책도 총수요에 영향을 준다. 다만 세금을 만큼 깎아 주면, 사람들은 늘어난 가처분소득 전부가 아니라 그중 한계소비성향만큼만 소비에 쓴다. 따라서 첫 라운드의 지출 증가가 가 아니라 이므로, 조세 승수(tax multiplier) 는 정부지출 승수보다 작다.
음(−)의 부호는 세금을 내리면() 소득이 늘어남을() 뜻한다. 같은 규모라도 정부가 직접 지출하는 편이 세금을 깎아 주는 것보다 총수요 진작 효과가 큰 이유가 여기에 있다.
통화정책과 이자율¶
두 번째 조종간은 중앙은행, 우리나라의 경우 한국은행이 쥐고 있다. 한국은행은 기준금리(基準金利, base rate) 를 조절해 경제 전반의 이자율에 영향을 미친다. 경기가 침체되어 총수요가 부족하면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내린다. 낮아진 금리는 기업의 대출 비용을 줄여 설비투자 를 촉진하고, 주택담보대출 부담을 낮춰 가계의 주택 구입과 소비를 늘리며, 원화가치를 낮춰 순수출 을 늘린다. 이 모든 경로가 총수요를 오른쪽으로 밀어 침체를 완화한다. 반대로 경기가 과열되어 물가가 불안하면 금리를 올려 총수요를 억제한다. 통화정책의 이러한 논리와 화폐·이자율의 상세한 작동 원리는 화폐금융을 다룬 장에서 이미 배운 바 있다.
자동안정화장치¶
정부가 매번 새로운 법안을 통과시키거나 한국은행이 회의를 열지 않아도, 경제에는 경기변동을 자동으로 완충하는 장치가 내장되어 있다. 이를 자동안정화장치(自動安定化裝置, automatic stabilizers) 라 한다. 대표적인 것이 누진적 소득세와 실업급여다. 경기가 좋아 소득이 늘면 사람들은 자동으로 더 높은 세율 구간으로 올라가 세금을 더 내므로 과열이 억제되고, 경기가 나빠 실직하면 실업급여가 자동으로 지급되어 소득과 소비의 급락을 막는다. 이 장치들은 별도의 정책 결정 없이도 경기의 진폭을 줄여 준다.
정책의 한계: 시차와 구축효과¶
안정화정책은 만능이 아니며 중요한 한계를 지닌다. 첫째는 정책시차(政策時差, policy lag) 다. 경기 상황을 파악하는 데 시간이 걸리고(인식 시차),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데 또 시간이 걸리며(실행 시차), 특히 재정정책은 국회의 예산 심의를 거쳐야 하므로 실행이 느리다. 나아가 집행된 정책이 실제로 효과를 내기까지도 시간이 걸린다(외부 시차). 이 시차들 때문에, 침체를 잡으려던 부양책이 정작 경제가 이미 회복된 뒤에 효과를 내며 오히려 과열을 부추기는 역설이 생길 수 있다.
둘째는 구축효과(驅逐效果, crowding-out effect) 다. 정부가 지출을 늘리려 국채를 대량 발행하면 대출 시장에서 자금 수요가 늘어 이자율이 오른다. 높아진 이자율은 민간의 투자와 소비를 위축시키므로, 정부지출 증가의 일부가 민간지출 감소로 상쇄된다. 즉 정부지출이 민간지출을 ‘밀어내는(crowd out)’ 것이다. 구축효과가 클수록 재정정책의 실제 승수는 앞서 계산한 이론값보다 작아진다. 이 밖에도 재정적자 누적에 따른 국가부채 문제, 정책 효과에 대한 불확실성 등이 안정화정책의 신중한 운용을 요구한다.
14.4 인플레이션과 실업¶
경기변동은 두 개의 얼굴을 가진다. 하나는 산출의 변동이고, 다른 하나는 그와 밀접하게 얽힌 실업과 물가의 변동이다. 이 절에서는 산출·실업·물가를 잇는 세 가지 실증적 규칙성, 곧 오쿤의 법칙, 필립스 곡선, 그리고 자연실업률 가설을 한국 데이터로 확인한다.
오쿤의 법칙: 성장과 실업을 잇는 다리¶
앞서 경기변동의 정형화된 사실에서, 산출이 줄면 실업이 는다고 했다. 이 관계를 처음으로 정량화한 사람이 미국의 경제학자 아서 오쿤(Arthur Okun)이며, 그의 이름을 딴 오쿤의 법칙은 경제성장률과 실업률 변화 사이의 안정적인 음(−)의 관계를 말한다. 직관은 단순하다.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려면 더 많은 사람이 일해야 하므로 실업률이 떨어지고, 반대로 성장이 둔화되거나 마이너스가 되면 기업이 고용을 줄여 실업률이 오른다. 아래 코드는 한국의 실질 GDP 성장률과 실업률 변화의 관계를 회귀분석으로 추정한다.
import requests
def wb_series(ind):
js=requests.get(f'https://api.worldbank.org/v2/country/KOR/indicator/{ind}?format=json&per_page=200',timeout=90).json()[1]
d=pd.DataFrame([(int(x['date']),x['value']) for x in js if x['value'] is not None],columns=['year','v'])
return d.sort_values('year')
g=wb_series('NY.GDP.MKTP.KD.ZG').rename(columns={'v':'growth'})
u=wb_series('SL.UEM.TOTL.ZS').rename(columns={'v':'u'})
d=g.merge(u,on='year').sort_values('year')
d['du']=d['u'].diff() # 실업률 변화(%p)
d=d.dropna()
b1,b0=np.polyfit(d['growth'],d['du'],1) # 오쿤 계수
print(f"표본: {d['year'].min()}~{d['year'].max()}, {len(d)}개 관측")
print(f"오쿤의 법칙 회귀: 실업률변화 = {b0:.2f} + ({b1:.3f})×성장률 → 성장률↑이면 실업↓")
fig, ax=plt.subplots(figsize=(9.5,6))
ax.scatter(d['growth'],d['du'],s=45,color='#2563eb',alpha=0.7,edgecolor='k',linewidth=0.3)
xs=np.linspace(d['growth'].min(),d['growth'].max(),50)
ax.plot(xs,b0+b1*xs,color='#dc2626',lw=2,label=f'추세선 (기울기={b1:.2f})')
ax.axhline(0,color='k',lw=0.6); ax.axvline(0,color='k',lw=0.6)
ax.set_title('오쿤의 법칙: 경제성장률과 실업률 변화 (한국)',fontweight='bold')
ax.set_xlabel('실질 GDP 성장률 (%)'); ax.set_ylabel('실업률 변화 (%p)'); ax.legend(); ax.grid(True,alpha=0.3)
plt.tight_layout(); plt.show()표본: 1992~2025, 34개 관측
오쿤의 법칙 회귀: 실업률변화 = 0.79 + (-0.178)×성장률 → 성장률↑이면 실업↓

산점도와 추세선이 오쿤의 법칙을 뚜렷이 보여 준다. 가로축은 실질 GDP 성장률, 세로축은 실업률의 연간 변화(%p)이며, 추세선의 기울기는 약 −0.18로 추정된다. 이 기울기의 의미를 새겨 보자. 성장률이 1%포인트 높아질 때마다 실업률은 평균적으로 약 0.18%포인트 낮아진다는 뜻이다. 뒤집어 말하면, 실업률을 1%포인트 낮추려면 성장률을 대략 %포인트만큼 끌어올려야 한다. 그림 오른쪽 아래로 향하는 점들의 무리, 즉 고성장이 실업률 하락과 함께 나타나고 저성장·역성장이 실업률 상승과 함께 나타나는 패턴이 이 음의 관계를 시각적으로 확인해 준다.
추세선이 가로축(실업률 변화=0)과 만나는 성장률, 즉 실업률을 그대로 유지하는 데 필요한 성장률을 손익분기 성장률(break-even growth rate) 이라 한다. 이보다 빠르게 성장해야 비로소 실업이 줄어든다. 이는 인구가 늘고 생산성이 향상되는 만큼 경제도 성장해야 겨우 제자리를 지킨다는 것을 뜻하며, 성장 둔화가 곧바로 고용 악화로 이어지는 이유를 설명한다. 다만 그림의 점들이 추세선 주위로 어느 정도 흩어져 있다는 점도 눈여겨봐야 한다. 오쿤의 법칙은 정확한 물리법칙이 아니라 평균적 경향이며, 고용 없는 성장이나 노동시장 구조 변화에 따라 그 계수는 시대와 나라마다 달라질 수 있다.
필립스 곡선: 실업과 인플레이션의 단기 상충¶
오쿤의 법칙이 산출과 실업을 이었다면, 필립스 곡선은 실업과 인플레이션을 잇는다. 1958년 뉴질랜드 출신 경제학자 A. W. 필립스(A. W. Phillips)는 영국의 100년치 자료에서 실업률이 낮은 해일수록 임금상승률이 높다는 규칙성을 발견했다. 이후 이 관계는 실업률과 물가상승률 사이의 음의 상관, 즉 단기적 상충관계(trade-off) 로 정식화되었다. 직관은 총수요-총공급 모형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총수요가 늘어 경기가 과열되면 실업률은 떨어지지만 물가는 오르고, 총수요가 위축되어 경기가 침체되면 실업률은 오르지만 물가 압력은 낮아진다. 즉 낮은 실업과 낮은 인플레이션을 동시에 누리기는 단기적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아래 코드는 한국의 실업률과 인플레이션을 연도별 색상으로 표시한 산점도로 이 관계를 살펴본다.
infl=wb_series('FP.CPI.TOTL.ZG').rename(columns={'v':'infl'})
pc=infl.merge(u,on='year').sort_values('year')
pc=pc[pc['year']>=1990] # 최근 구간
print(f"필립스곡선 표본: {pc['year'].min()}~{pc['year'].max()}")
fig, ax=plt.subplots(figsize=(9,6))
sc=ax.scatter(pc['u'],pc['infl'],c=pc['year'],cmap='viridis',s=55,edgecolor='k',linewidth=0.3)
cb=fig.colorbar(sc,ax=ax); cb.set_label('연도')
ax.set_title('필립스 곡선: 실업률과 인플레이션 (한국, 1990~)',fontweight='bold')
ax.set_xlabel('실업률 (%)'); ax.set_ylabel('인플레이션 (%)'); ax.grid(True,alpha=0.3)
plt.tight_layout(); plt.show()필립스곡선 표본: 1991~2025

이 그림은 필립스 곡선의 이론적 모습과 현실의 미묘한 차이를 함께 보여 준다. 각 점은 한 해의 (실업률, 인플레이션) 조합이고, 색상은 연도를 나타낸다(어두운 색이 이른 시기, 밝은 색이 최근).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시간에 따른 전반적인 하향 이동이다. 1990년대 초의 점들(어두운 색)은 인플레이션이 대체로 5% 안팎으로 높은 영역에 위치한 반면, 2010년대 이후의 점들(밝은 색)은 인플레이션이 1~2%대로 내려앉은 낮은 영역에 몰려 있다. 이는 한국 경제가 고성장·고물가 시대에서 저성장·저물가 시대로 이행했음을, 그리고 물가안정목표제 정착으로 인플레이션 기대가 낮게 안정되었음을 반영한다.
또한 몇몇 극단적인 점들은 위기의 흔적이다. 실업률이 유난히 높은 오른쪽의 점은 대량 실업이 발생한 1998년 외환위기 시기이며, 인플레이션이 다시 튀어 오른 밝은 색 점은 국제 원자재값 급등으로 물가가 5%를 넘었던 2022년 무렵이다. 중요한 것은, 특정 시기 안에서는 실업과 인플레이션의 음의 상충이 나타나지만, 수십 년의 긴 자료를 하나의 곡선으로 묶으려 하면 관계가 흐트러진다는 점이다. 필립스 곡선은 고정된 곡선이 아니라 시간에 따라 위아래로 이동하는 곡선인 것이다. 바로 이 이동을 설명하는 것이 자연실업률 가설이다.
자연실업률 가설: 장기에는 상충이 사라진다¶
1960년대 말,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과 에드먼드 펠프스(Edmund Phelps)는 필립스 곡선의 상충관계가 단기에만 성립한다고 주장했다. 그 핵심은 사람들이 인플레이션을 예상하고 행동을 바꾼다는 점이다. 정부가 총수요를 계속 자극해 실업을 자연 수준 아래로 낮추려 하면, 처음에는 뜻밖의 물가상승 덕에 잠깐 실업이 줄지만, 이내 노동자와 기업이 높은 인플레이션을 예상하고 임금 인상을 요구한다. 그러면 실업률은 다시 원래 수준으로 돌아가고 물가만 더 높아진 채 남는다. 이렇게 인플레이션을 안정시키지도 가속시키지도 않는 실업률을 자연실업률(自然失業率, natural rate of unemployment) 이라 한다.
이 가설에 따르면 장기 필립스 곡선은 자연실업률 수준에서 수직이다. 즉 장기적으로는 인플레이션이 몇 %이든 실업률은 결국 자연실업률로 수렴하며, 통화정책으로 실업을 영구히 낮출 수는 없다. 이는 앞서 본 수직의 장기총공급곡선과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단기에는 총수요 관리로 산출과 실업을 움직일 수 있지만, 장기에는 실물적 요인만이 이들을 결정한다는 일관된 메시지다.
14.5 경제위기의 세 장면: 1997, 2008, 2020¶
지금까지 배운 개념들, 즉 수요충격과 공급충격, 총수요 관리, 재정·통화정책은 추상적 이론이 아니라 한국 경제가 실제로 통과한 위기들 속에서 생생하게 작동했다. 세 차례의 큰 위기를 나란히 놓고 원인과 대응을 비교해 보면, 같은 도구가 서로 다른 상황에서 어떻게 쓰였는지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1997년 외환위기¶
1997년 말 한국을 덮친 외환위기(外換危機)는 대외 부문에서 시작된 금융 위기였다. 그 뿌리에는 기업의 과도한 차입과 문어발식 확장, 금융기관의 부실한 위험 관리, 그리고 단기 외채에 지나치게 의존한 취약한 외환 구조가 있었다. 태국에서 시작된 아시아 금융위기가 번지자 외국 자본이 급격히 빠져나갔고, 외환보유액이 바닥나면서 한국은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그 대가로 받아들인 처방은 고금리와 긴축이라는, 지금 기준으로는 이례적인 것이었다. 자본 유출을 막고 환율을 방어하기 위해 금리를 대폭 끌어올렸고, 부실 기업과 금융기관을 대대적으로 정리했다. 그 결과 1998년 성장률은 −5%대로 추락하고 실업률은 앞의 필립스 곡선 그림에서 본 것처럼 7% 가까이 치솟았다. 뼈아픈 구조조정이었지만, 한국은 비교적 빠르게 위기를 벗어났고 기업 지배구조와 금융 감독 체계를 크게 개혁하는 계기가 되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08년의 위기는 미국 주택시장의 거품 붕괴와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에서 촉발되어 전 세계로 번진 금융 위기였다. 리먼 브라더스 파산 이후 국제 금융시장이 마비되자,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도 극심한 총수요 충격을 받아 원화가치가 급락하고 성장이 위축되었다. 그러나 이번의 대응은 1997년과 정반대였다.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5.25%에서 2%까지 신속히 인하했고, 정부는 대규모 추가경정예산으로 재정을 풀었으며, 미국·유럽·일본 등 주요국도 일제히 확장적 통화·재정정책과 이례적인 양적완화에 나섰다. 케인스식 총수요 부양의 세계적 재현이었다. 그 결과 한국은 주요국 가운데 상대적으로 빠르게 회복해 2010년에는 6%대 성장을 되찾았다. 1997년의 긴축과 2008년의 부양이라는 대조는, 위기의 성격과 각국의 대응 여력에 따라 정책 처방이 달라진다는 점을 잘 보여 준다.
2020년 코로나 위기¶
2020년의 위기는 앞선 두 위기와 성격이 근본적으로 달랐다. 금융의 문제가 아니라 감염병이라는 외생적 충격이 수요와 공급을 동시에 강타한, 유례없는 복합 충격이었다. 봉쇄와 거리두기로 대면 서비스 수요가 증발하는 동시에(수요 충격), 공장 가동 중단과 국제 물류 마비로 공급망도 끊겼다(공급 충격). 각국은 전례 없는 규모로 대응했다.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인 0.5%로 내렸고, 정부는 여러 차례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며 소상공인과 취약계층을 직접 지원했다. 이 대규모 부양은 경기의 급락을 막는 데 성공했지만, 넘쳐난 유동성과 억눌렸던 수요의 분출, 그리고 공급망 병목과 국제 원자재값 급등이 겹치면서 2021~2022년에는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높은 인플레이션이 되돌아왔다. 필립스 곡선 그림에서 최근의 인플레이션이 다시 튀어 오른 것이 바로 이 시기다. 이에 각국 중앙은행은 다시 금리를 빠르게 올려 물가를 잡는 긴축으로 전환했다.
이 장의 요약¶
이 장은 경제가 장기 성장 추세 위에서 왜 단기적으로 출렁이는가, 그리고 그 출렁임을 어떻게 다스릴 수 있는가를 다뤘다.
첫째, 거시경제 분석은 가격이 경직적인 단기와 가격이 신축적인 장기를 구분한다. 단기에는 수요 변화가 물가가 아닌 산출과 고용의 변화로 나타나므로 경기변동과 안정화정책이 의미를 갖는다. 경기순환은 호황·정점·침체·저점의 네 국면을 불규칙하게 반복하며, 실제 산출과 잠재산출의 차이인 GDP갭으로 경기 상태를 진단한다.
둘째, 총수요-총공급 모형은 물가수준과 실질 산출의 동시 결정을 그린다. 총수요곡선은 자산·이자율·환율 효과로 우하향하고, 단기총공급곡선은 가격 경직성 때문에 우상향하며, 장기총공급곡선은 잠재산출에서 수직이다. 코드 실습에서 확인했듯 부정적 수요충격은 총수요곡선을 왼쪽으로 밀어 산출을 잠재수준(100) 아래(83.3)로 떨어뜨리는 경기침체를 낳는다. 공급충격은 산출 감소와 물가상승이 겹치는 스태그플레이션을 부른다.
셋째, 부족한 총수요는 재정정책(정부지출·조세)과 통화정책(금리)으로 관리한다. 정부지출은 승수효과를 통해 처음 지출액보다 큰 소득 증가를 낳으며, 승수는 로 한계소비성향이 클수록 크다. 그러나 정책시차와 구축효과, 자동안정화장치의 존재는 재량정책의 효과와 필요성을 제약한다.
넷째, 산출·실업·물가는 세 규칙성으로 연결된다. 오쿤의 법칙은 성장률과 실업률 변화의 음의 관계(한국 추정 기울기 약 −0.18)를, 필립스 곡선은 실업과 인플레이션의 단기 상충을 보여 준다. 그러나 자연실업률 가설에 따르면 이 상충은 단기에만 성립하며, 장기 필립스 곡선은 자연실업률에서 수직이다. 마지막으로 1997·2008·2020년의 세 위기는 위기의 성격에 따라 긴축과 부양이라는 상반된 처방이 어떻게 적용되었는지를 생생히 보여 주었다.
핵심 용어¶
| 한국어 | English | 정의 |
|---|---|---|
| 경기변동 | business cycle | 실질 GDP 등 총체적 경제활동이 장기 추세를 중심으로 확장과 수축을 반복하는 단기적 요동 |
| 잠재산출 | potential output | 생산요소를 인플레이션을 가속시키지 않는 지속 가능한 수준으로 가동할 때 달성 가능한 산출량 |
| GDP갭 | GDP gap | 실제 산출과 잠재산출의 차이를 백분율로 나타낸 값; 양이면 과열, 음이면 침체 |
| 가격 경직성 | price stickiness | 가격과 임금이 시장 변화에 즉각 조정되지 못하고 한동안 고정되는 성질; 단기 분석의 전제 |
| 총수요 | aggregate demand | 각 물가수준에서 경제 전체가 사려는 재화·서비스의 총량() |
| 총공급 | aggregate supply | 각 물가수준에서 기업들이 생산·판매하려는 재화·서비스의 총량 |
| 단기총공급 | short-run aggregate supply (SRAS) | 가격 경직성으로 인해 우상향하는 단기의 총공급곡선 |
| 장기총공급 | long-run aggregate supply (LRAS) | 잠재산출 수준에서 수직인 총공급곡선; 화폐의 중립성을 반영 |
| 승수효과 | multiplier effect | 지출 증가가 연쇄적 소비를 통해 최초 지출보다 큰 소득 증가를 낳는 현상 |
| 한계소비성향 | marginal propensity to consume (MPC) | 추가 소득 중 소비로 지출되는 비율 |
| 재정정책 | fiscal policy | 정부지출과 조세를 조절해 총수요에 영향을 주는 정책 |
| 통화정책 | monetary policy | 중앙은행이 금리·통화량을 조절해 총수요에 영향을 주는 정책 |
| 자동안정화장치 | automatic stabilizers | 누진세·실업급여처럼 별도 결정 없이 경기 진폭을 완화하는 제도적 장치 |
| 구축효과 | crowding-out effect | 정부지출 확대가 이자율을 올려 민간 투자·소비를 위축시키는 상쇄 효과 |
| 필립스 곡선 | Phillips curve | 실업률과 인플레이션의 단기적 음의 상충관계를 나타내는 곡선 |
| 자연실업률 | natural rate of unemployment | 인플레이션을 가속·둔화시키지 않는 실업률; 장기 필립스 곡선이 수직이 되는 수준 |
| 오쿤의 법칙 | Okun’s law | 경제성장률과 실업률 변화 사이의 안정적인 음(−)의 관계 |
| 스태그플레이션 | stagflation | 경기침체와 물가상승이 동시에 나타나는 현상; 부정적 공급충격의 결과 |
연습문제¶
개념 이해
거시경제학에서 단기와 장기를 나누는 기준은 달력상의 길이가 아니라 무엇인가? 이 구분이 경기변동 분석에서 왜 결정적인지 설명하라.
총수요곡선이 우하향하는 세 가지 이유(자산효과·이자율효과·환율효과)를 각각 소비·투자·순수출과 연결하여 서술하라.
장기총공급곡선이 수직인 이유를 화폐의 중립성 개념과 연결하여 설명하라. 이것이 단기총공급곡선이 우상향하는 이유와 어떻게 대비되는가?
자연실업률 가설에 따르면 필립스 곡선의 단기 상충관계는 왜 장기에는 사라지는가? 인플레이션 기대의 역할을 중심으로 논하라.
계산
어느 경제의 잠재산출이 2,000조 원이고 실제 실질 GDP가 1,880조 원이다. GDP갭을 백분율로 계산하고, 이 경제가 과열인지 침체인지 판정하라.
한계소비성향이 일 때 정부지출 승수를 계산하라. 정부가 정부지출을 40조 원 늘리면 국민소득은 이론적으로 얼마나 증가하는가? 또 같은 규모(40조 원)의 감세를 시행하면 소득 증가는 얼마인가? 두 결과를 비교해 그 차이의 이유를 설명하라.
오쿤의 법칙 회귀식이 '실업률 변화(%p) 성장률(%)'로 추정되었다고 하자. (a) 실업률을 변화시키지 않는 손익분기 성장률을 구하라. (b) 성장률이 −2%일 때 실업률은 얼마나 변하는가? (c) 실업률을 2%포인트 낮추려면 성장률이 얼마여야 하는가?
총수요가 , 단기총공급이 로 주어진 경제의 단기균형 산출과 물가를 구하라. 잠재산출이 이라면 이 경제는 인플레이션 갭 상태인가 경기침체 갭 상태인가?
데이터 해석
본문 오쿤의 법칙 산점도[C2]에서 추정된 기울기는 약 −0.18이었다. 이 값의 경제적 의미를 한 문장으로 서술하고, 점들이 추세선 주위로 흩어져 있다는 사실이 '법칙’이라는 명칭에 대해 무엇을 시사하는지 논하라.
본문 필립스 곡선 산점도[C3]는 시간에 따라 전반적으로 하향 이동하는 모습을 보였다. 1990년대 초의 점들과 2010년대 이후의 점들이 서로 다른 영역에 위치한 이유를, 인플레이션 기대와 물가안정목표제의 관점에서 설명하라. 또한 1998년과 2022년에 해당하는 이례적 점들이 각각 어떤 사건을 반영하는지 서술하라.
서술·응용
부정적 공급충격(예: 국제 유가 급등)이 발생했을 때 총수요-총공급 그림에서 어떤 곡선이 어느 방향으로 이동하며, 산출과 물가는 각각 어떻게 되는지 설명하라. 이때 총수요 부양책과 물가 안정책이 서로 상충하는 이유를 논하라.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한국의 통화정책 방향(금리 인상 대 인하)이 정반대였다. 두 위기의 성격 차이에 비추어 왜 상반된 처방이 나왔는지 설명하라.
재정정책의 두 가지 대표적 한계인 정책시차와 구축효과를 각각 설명하고, 이 한계들이 재정정책의 실제 승수를 이론값보다 작게 만드는 이유를 논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