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한국전쟁의 포화가 멎었을 때, 대한민국은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다. 국토는 잿더미가 되었고, 1인당 소득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보다도 낮았으며, 많은 경제학자들은 이 나라가 스스로의 힘으로 빈곤을 벗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보았다. 그로부터 두 세대가 지난 오늘날, 그 나라의 국민은 세계에서 가장 정교한 반도체를 설계하고, 자동차와 선박을 수출하며, 1인당 소득으로 여러 서유럽 국가를 앞지른다. 같은 반세기 동안, 비슷한 출발선에 서 있던 어떤 나라들은 거의 제자리걸음을 했고, 몇몇은 오히려 뒷걸음질쳤다. 무엇이 이 거대한 운명의 갈림길을 만들었는가? 왜 어떤 나라는 부유해지고 어떤 나라는 계속 가난한가? 이 질문은 경제학에서 가장 오래되었으면서도 가장 중요한 질문이며, 노벨상 수상자 로버트 루카스(Robert Lucas)는 이 문제를 한번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하면 "다른 무엇도 생각하기 어렵다"고 고백한 바 있다.
앞선 여러 장에서 우리는 경기변동, 즉 실업과 물가가 몇 분기 혹은 몇 년의 주기로 오르내리는 단기의 세계를 다루었다. 그러나 한 나라 국민의 생활수준을 궁극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경기의 등락이 아니라 장기(long run)에 걸친 꾸준한 성장이다. 아무리 불황이 깊어도 그것은 몇 년의 이야기이지만, 성장률이 매년 1%포인트만 달라져도 한 세대가 지나면 두 나라의 생활수준은 완전히 다른 세계가 된다. 이 장에서 우리는 이 장기 성장의 논리를 파헤친다. 먼저 성장이 왜 다른 모든 경제 문제를 압도할 만큼 중요한지를 확인하고, 성장의 원천을 자본·노동·생산성으로 분해하는 성장회계(growth accounting)를 배운다. 이어서 20세기 거시경제학의 초석인 솔로우 모형(Solow model)을 통해 자본축적이 어떻게 성장을 낳고 또 어떻게 한계에 부딪히는지를 이해하며, 마지막으로 실제 데이터로 각국의 성장 경험과 한국의 압축성장을 해석한다.
12.1 성장이 왜 가장 중요한가¶
경제성장(economic growth)이란 한 나라가 생산하는 재화와 서비스의 총량, 특히 1인당 실질 총생산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현상을 말한다. 우리가 관심을 두는 것은 어느 해에 총생산이 우연히 늘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것이 여러 세대에 걸쳐 복리(compound)로 누적된다는 점이다. 바로 이 복리의 힘 때문에, 언뜻 사소해 보이는 성장률의 차이가 장기적으로는 나라의 운명을 가른다.
직관을 얻기 위해 두 가상의 나라를 상상해 보자. 두 나라 모두 오늘 1인당 소득이 똑같이 10,000달러라고 하자. A국은 앞으로 매년 1%씩 성장하고, B국은 매년 3%씩 성장한다. 연 2%포인트의 차이는 한 해만 놓고 보면 200달러 남짓의 차이에 불과해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나 이 차이가 100년 동안 복리로 쌓이면, A국의 소득은 달러가 되는 반면 B국의 소득은 달러가 된다. 한 세기 뒤 B국 국민은 A국 국민보다 일곱 배 넘게 부유해지는 것이다. 처음에는 형제처럼 닮았던 두 나라가 종국에는 완전히 다른 세계에 살게 된다. 이것이 바로 경제학자들이 성장률의 미세한 차이에 그토록 집착하는 이유다.
이 복리의 위력을 손쉽게 가늠하는 도구가 1장에서 소개한 **70의 법칙(rule of 70)**이다. 어떤 양이 매년 일정한 비율 (퍼센트)로 성장한다면, 그 양이 두 배가 되는 데 걸리는 시간(배가기간, doubling time)은 근사적으로 다음과 같다.
이 공식은 연속복리에서 정확히 성립한다. 원금이 두 배가 되는 조건은 , 즉 이므로, 를 퍼센트로 표기하면 가 된다. 이 간단한 어림셈이 주는 통찰은 강력하다. 성장률이 1%인 나라는 생활수준이 두 배가 되는 데 무려 70년, 즉 거의 한 사람의 평생이 걸린다. 성장률이 3%면 약 23년, 곧 한 세대면 충분하다. 그리고 한국이 고도성장기에 기록했던 연 7% 안팎의 성장률이라면 배가기간은 단 10년으로 줄어든다. 실제로 한국은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대략 10년마다 1인당 소득이 두 배로 뛰는 경험을 반복했고, 그 결과 한 사람이 태어나 중년에 이르는 사이 소득이 수십 배로 불어나는, 인류 역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변화를 겪었다.
성장이 중요한 이유는 단지 숫자가 커지기 때문만이 아니다. 지속적인 성장은 빈곤의 감소, 기대수명의 연장, 교육 기회의 확대, 유아 사망률의 하락과 같은 인간 삶의 근본적 개선과 촘촘히 연결되어 있다. 성장하는 경제에서는 어떤 사람의 몫이 커지기 위해 반드시 다른 사람의 몫이 줄어들 필요가 없다. 파이 자체가 커지므로 분배를 둘러싼 갈등이 완화되고, 미래에 대한 기대가 오늘의 투자와 협력을 이끌어낸다. 반대로 성장이 멈춘 사회에서는 모든 경제 문제가 제로섬(zero-sum)의 다툼으로 변질되기 쉽다. 그렇기에 장기 성장의 결정요인을 이해하는 일은 거시경제학이 인류의 후생에 기여할 수 있는 가장 값진 지적 작업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12.2 성장회계: 성장의 원천을 분해하다¶
성장이 중요하다는 데 동의했다면, 다음 질문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성장은 대체 어디에서 오는가? 한 나라의 총생산이 늘어나는 데에는 크게 세 가지 통로가 있다. 첫째, 노동자들이 더 많은 기계·건물·설비, 즉 더 많은 물적 자본(physical capital)을 가지고 일하기 때문일 수 있다. 둘째, 일하는 사람의 수 자체, 곧 노동(labor) 투입이 늘었기 때문일 수 있다. 셋째, 같은 양의 자본과 노동으로도 예전보다 더 많이 생산하게 되었기 때문일 수 있다. 이 세 번째 통로가 바로 생산성의 향상이다. 성장회계(growth accounting)는 실제로 관측된 총생산의 증가를 이 세 요인의 기여로 정량적으로 쪼개어, 성장의 몇 퍼센트가 자본에서, 몇 퍼센트가 노동에서, 그리고 몇 퍼센트가 순수한 생산성 향상에서 왔는지를 밝히는 회계 기법이다.
출발점은 총생산함수(aggregate production function)다. 한 경제의 총생산 가 자본 , 노동 , 그리고 기술수준을 나타내는 요소 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고, 실증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콥-더글러스(Cobb-Douglas) 형태로 적으면 다음과 같다.
여기서 는 **총요소생산성(total factor productivity, TFP)**으로, 주어진 자본과 노동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결합해 산출로 바꾸는지를 나타내는 척도다. 지수 는 자본의 산출탄력성으로, 자본이 1% 늘 때 산출이 몇 % 느는지를 뜻한다. 완전경쟁과 규모수익불변(constant returns to scale) 가정 아래서 는 국민소득 중 자본에 돌아가는 몫, 즉 자본소득분배율과 같아지며 여러 나라에서 대략 부근의 값을 갖는다. 규모수익불변이란 자본과 노동을 동시에 두 배로 늘리면 산출도 정확히 두 배가 된다는 성질이며, 이라는 지수의 합에 그 성질이 담겨 있다.
이 생산함수의 양변에 로그를 취하고 시간에 대해 변화율로 바꾸면, 각 변수의 증가율 사이의 깔끔한 관계식이 얻어진다. 어떤 변수 의 성장률을 로 표기하면,
이 식이 성장회계의 심장이다. 좌변은 총생산의 성장률이고, 우변은 그것을 세 조각으로 나눈 것이다. 는 자본 축적이 성장에 기여한 몫(자본기여), 은 노동 투입 증가가 기여한 몫(노동기여), 그리고 는 자본과 노동으로 설명되지 않는 나머지, 곧 총요소생산성의 증가율이다.
문제는 를 직접 관측할 수 없다는 점이다. 우리는 산출, 자본, 노동, 그리고 분배율 는 통계로 측정할 수 있지만 생산성 자체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경제학자들은 위 식을 에 대해 풀어, TFP 증가율을 나머지 항들로부터 역산한다.
이렇게 총생산 증가율에서 자본과 노동이 설명하는 부분을 모두 빼고 남는 잔차를 **솔로우 잔차(Solow residual)**라 부른다. 로버트 솔로우가 1957년 논문에서 처음 이 방식으로 미국의 20세기 전반 성장을 분해했을 때, 그는 놀라운 결과를 얻었다. 1인당 산출 증가의 대략 8분의 7이 자본축적이 아니라 이 정체불명의 잔차, 곧 생산성 향상에서 왔던 것이다. 자본을 더 쌓는 것만으로는 부자가 된 이유의 극히 일부밖에 설명되지 않았다.
성장회계는 그 자체로 성장의 '원인’을 규명하는 이론은 아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후적인 분해, 즉 이미 일어난 성장을 요인별로 갈라 보여주는 회계 장치다. 왜 어떤 나라의 TFP는 빠르게 오르고 어떤 나라는 그렇지 못한가라는 근본 질문에는 답하지 못한다. 그러나 성장회계는 어느 나라의 성장이 주로 요소 투입의 양적 확대(자본과 노동을 더 많이 쏟아붓는 것)에 의존했는지, 아니면 효율의 질적 개선에 의존했는지를 가려냄으로써, 그 성장이 앞으로도 지속 가능한지를 진단하는 강력한 출발점을 제공한다. 이 질문의 이론적 뼈대를 세우기 위해, 이제 우리는 솔로우 모형으로 들어간다.
12.3 솔로우 모형: 자본축적과 정상상태¶
성장회계가 성장을 사후적으로 분해하는 자로 그친다면, 솔로우 모형(Solow model)은 자본이 어떻게 시간에 따라 스스로 쌓이고 또 어떤 한계에 부딪히는지를 동학(dynamics)으로 설명하는 이론이다. 1956년 로버트 솔로우가 제시한 이 모형은 단순하지만, 국가 간 소득 격차와 성장률의 수렴 여부에 관해 지금도 통용되는 가장 기본적인 언어를 제공한다.
모형의 핵심 아이디어는 이렇다. 한 나라가 매년 생산한 것 중 일부를 소비하지 않고 저축·투자하여 자본을 늘리면, 이듬해에는 더 많은 자본으로 더 많이 생산할 수 있다. 그러나 자본은 시간이 지나면 마모되고 낡아 없어지므로(감가상각), 새로 쌓는 자본이 마모되는 자본을 넘어서는 만큼만 순수하게 축적된다. 이 두 힘, 즉 투자를 통한 자본 증가와 감가상각을 통한 자본 감소가 밀고 당기는 과정에서 경제가 어디로 수렴하는지를 밝히는 것이 모형의 목표다.
분석을 1인당 변수로 옮기면 훨씬 명료해진다. 노동자 1인당 자본을 , 1인당 산출을 라 하자. 규모수익불변 덕분에 1인당 생산함수는 의 단순한 형태로 쓸 수 있고, 우리가 다룰 구체적 예에서는 이다. 이 함수의 결정적 성질은 **자본의 한계생산 체감(diminishing marginal product of capital)**이다. 은 항상 양수이지만 가 커질수록 작아진다. 즉 자본이 아직 귀한 가난한 나라에서는 기계 한 대를 더 놓았을 때 산출이 크게 늘지만, 이미 자본이 넘치는 부유한 나라에서는 같은 기계 한 대의 추가 효과가 미미하다. 이 체감 성질이 뒤에서 볼 정상상태와 수렴의 논리를 모두 낳는 열쇠다.
이제 1인당 자본의 시간에 따른 변화를 나타내는 **자본축적 방정식(capital accumulation equation)**을 세우자. 인구증가와 기술진보가 없는 가장 단순한 경우, 저축률(=투자율)을 , 감가상각률을 라 하면 다음이 성립한다.
우변의 첫 항 는 1인당 투자, 즉 생산물 중 저축되어 새 자본으로 더해지는 몫이다. 둘째 항 는 마모로 사라지는 자본이며, 흔히 **손익분기 투자(break-even investment)**라 부른다. 자본 한 단위를 그대로 유지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투자라는 뜻이다. 두 항의 차이가 양이면 자본이 늘고, 음이면 줄며, 정확히 같아지면 자본은 더 이상 변하지 않는다.
바로 그 자본이 변하지 않는 상태, 을 만족하는 자본 수준을 정상상태(steady state) 자본 라 한다. 조건을 적으면
이며, 우리 예의 수치 , , 을 대입하면
가 되고, 이때 1인당 산출은 이다. 이 두 힘이 그래프에서 어떻게 만나는지를 직접 그려 확인해 보자.
아래 코드는 먼저 한글 폰트를 설정한 뒤, 솔로우 모형의 두 핵심 곡선을 그린다. 하나는 1인당 투자 곡선 이고, 다른 하나는 손익분기 투자 직선 이다. 두 곡선이 만나는 점의 가로좌표가 정상상태 자본 이며, 우리가 손으로 푼 값과 일치하는지, 그리고 왜 경제가 반드시 그 점으로 끌려가는지를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 목적이다.
import numpy as np
import matplotlib.pyplot as plt
import matplotlib.font_manager as fm
import logging
_av={f.name for f in fm.fontManager.ttflist}
for _f in ['Malgun Gothic','AppleGothic','NanumGothic','Noto Sans CJK KR','Noto Sans KR']:
if _f in _av: plt.rcParams['font.family']=_f; break
plt.rcParams['axes.unicode_minus']=False
logging.getLogger('matplotlib.font_manager').setLevel(logging.ERROR)
# 1인당 생산함수 y=f(k)=k^alpha, 저축률 s, 감가상각 delta
alpha, s, delta = 0.3, 0.3, 0.05
k=np.linspace(0,60,400)
y=k**alpha
inv=s*y # 1인당 투자 = 저축
dep=delta*k # 필요 투자(감가상각)
kstar=(s/delta)**(1/(1-alpha)) # 정상상태 자본
ystar=kstar**alpha
print(f'정상상태 자본 k* = {kstar:.1f}, 1인당 생산 y* = {ystar:.2f}')
fig, ax=plt.subplots(figsize=(9.5,6))
ax.plot(k,y,color='#2563eb',lw=2.4,label='1인당 생산 y=f(k)')
ax.plot(k,inv,color='#16a34a',lw=2.2,label='1인당 투자 s·f(k)')
ax.plot(k,dep,color='#dc2626',lw=2.2,label='감가상각 δ·k')
ax.axvline(kstar,ls=':',color='gray'); ax.plot(kstar,s*ystar,'ko',ms=8)
ax.annotate('정상상태 (투자=감가상각)',(kstar,s*ystar),xytext=(-30,20),textcoords='offset points',fontweight='bold')
ax.set_title('솔로우 성장모형: 자본축적과 정상상태',fontweight='bold')
ax.set_xlabel('1인당 자본 k'); ax.set_ylabel('1인당 산출·투자'); ax.set_xlim(0,60); ax.set_ylim(0,4); ax.legend()
plt.tight_layout(); plt.show()정상상태 자본 k* = 12.9, 1인당 생산 y* = 2.16

그림을 읽어 보자. 위로 볼록하게 완만히 휘어 오르는 곡선이 1인당 투자 이고, 원점을 지나는 곧은 직선이 감가상각(손익분기 투자) 이다. 투자 곡선이 위로 볼록한 것은 바로 자본의 한계생산 체감 때문으로, 자본이 늘수록 추가 생산과 그로부터의 추가 투자가 점점 완만해지는 반면, 감가상각은 자본에 정비례하여 일정한 기울기로 곧게 증가한다. 두 선은 원점 부근에서는 투자 곡선이 위에 있다가, 에서 정확히 교차하고, 그 오른쪽에서는 감가상각 직선이 위로 올라선다.
이 교차점이 왜 안정적인 종착지인지가 핵심이다. 자본이 보다 적은 왼쪽 영역에서는 투자가 감가상각을 웃돌아 , 즉 자본이 저절로 쌓여 오른쪽으로 밀려간다. 반대로 자본이 보다 많은 오른쪽 영역에서는 마모가 새 투자를 앞질러 , 자본이 줄며 왼쪽으로 되돌아온다. 어느 지점에서 출발하든 경제는 화살표처럼 로 수렴하며, 일단 도달하면 그곳에 머문다. 정상상태에서 1인당 산출은 으로 고정되고, 더 이상 1인당 성장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 마지막 사실, 즉 순수한 자본축적만으로는 성장이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는 점이 솔로우 모형이 주는 가장 중요하고도 다소 충격적인 교훈이다.
이 정상상태의 위치는 곧 소비와도 직결된다. 정상상태에서 1인당 소비는 산출에서 투자(=감가상각)를 뺀 이다. 흥미롭게도 우리 예에서 저축률 은 자본분배율 과 정확히 같은데, 이는 뒤에서 볼 황금률 저축률과 일치하여 이 경제가 우연히도 소비를 극대화하는 지점에 놓여 있음을 뜻한다.
저축률의 효과: 수준효과와 성장효과¶
정상상태의 위치가 저축률 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살펴보면 정책적으로 매우 중요한 통찰이 나온다. 정상상태 조건 을 일반적으로 풀면
이 된다. 저축률 가 높을수록 투자 곡선 전체가 위로 들려 올라가 감가상각 직선과 더 오른쪽에서 만나므로, 정상상태 자본과 산출이 모두 커진다. 즉 저축과 투자를 많이 하는 나라는 그렇지 않은 나라보다 더 부유한 정상상태에 도달한다. 이것은 왜 투자율이 높은 나라들이 대체로 1인당 소득이 높은지를 잘 설명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결정적인 단서가 붙는다. 저축률의 상승은 정상상태 소득의 **수준(level)을 한 번 끌어올릴 뿐, 정상상태의 성장률(rate)**을 영구히 높이지는 못한다. 이 구분이 솔로우 모형의 가장 정교하고도 자주 오해되는 부분이다. 저축률을 예컨대 20%에서 30%로 높이면, 경제는 예전보다 높은 새 정상상태를 향해 한동안 빠르게 성장한다. 이 과도기적 고성장을 **수준효과(level effect)**라 부른다. 그러나 일단 새 정상상태에 다다르면 1인당 성장은 다시 멈춘다. 저축률을 아무리 높여도 그것이 100%를 넘을 수는 없으므로, 저축률을 계속 올려 성장을 영구히 유지하는 것은 원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를 성장효과(growth effect)의 부재라 한다. 요컨대 근검절약과 높은 투자는 나라를 더 부유한 정착지로 데려다주지만, 그 정착지에 도달한 뒤의 지속적 성장은 다른 곳에서 와야 한다.
황금률: 얼마나 저축해야 하는가¶
저축률이 높을수록 정상상태 소득이 커진다면, 저축은 무조건 많을수록 좋은가? 그렇지 않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누리는 것은 산출 자체가 아니라 소비이며, 저축을 늘리면 미래의 소득은 커지지만 그만큼 현재와 미래의 소비를 자본 유지에 바쳐야 한다. 정상상태 소비 를 극대화하는 자본 수준을 황금률(golden rule) 자본이라 하며, 그 조건은 자본의 한계생산이 감가상각률과 같아지는 점, 즉
이다. 직관적으로, 자본을 한 단위 더 쌓았을 때 늘어나는 산출()이 그 자본을 유지하는 비용()과 같아질 때까지만 자본을 쌓는 것이 소비 극대화의 조건이다. 콥-더글러스 생산함수에서는 이 조건이 저축률로 옮겨져 놀랍도록 간단해진다. 황금률 저축률은 자본분배율과 정확히 같아서 이다. 우리 예에서 이므로 황금률 저축률은 30%이고, 이는 우리가 설정한 과 일치한다. 이 경제가 앞서 계산한 정상상태에서 소비를 극대화하고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만약 어떤 나라가 황금률보다 더 많이 저축하고 있다면, 저축을 줄여 당장의 소비를 늘리고도 장기 소비까지 함께 늘릴 수 있는 ‘과잉저축(dynamic inefficiency)’ 상태에 있는 것이다.
수렴: 왜 가난한 나라가 더 빨리 성장할 수 있는가¶
솔로우 모형의 가장 검증 가능하고도 논쟁적인 예측은 수렴(convergence) 가설이다. 자본의 한계생산 체감을 다시 떠올리자. 자본이 아직 매우 부족한 가난한 나라에서는 가 크므로, 같은 저축률로 투자하더라도 자본 한 단위의 추가가 산출을 크게 늘린다. 반면 이미 자본이 풍부한 부유한 나라에서는 가 작아 추가 투자의 효과가 미미하다. 그 결과, 정상상태보다 멀리 아래에 있는 가난한 나라일수록 정상상태로 다가가는 성장 속도가 빠르다. 이론이 옳다면, 조건이 비슷한 나라들 사이에서 초기에 가난했던 나라가 부유했던 나라보다 더 빠르게 성장하여 결국 소득 수준이 서로 가까워져야 한다.
여기서 두 종류의 수렴을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절대적(무조건) 수렴은 저축률·인구증가율·기술 등 모든 조건과 무관하게 모든 나라가 하나의 공통 소득 수준으로 수렴한다는 강한 주장이다. **조건부 수렴(conditional convergence)**은 저축률·인구증가율·제도 등 각자의 정상상태를 결정하는 조건이 비슷한 나라들끼리만, 각자의 정상상태로 수렴한다는 약한 주장이다. 솔로우 모형이 실제로 예측하는 것은 후자다. 서로 정상상태가 다른 나라들은 애초에 다른 목적지를 향해 달리므로, 초기 소득만으로 수렴을 기대할 수 없다. 이 미묘한 차이가 다음 절의 실증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12.4 실증: 수렴의 증거와 한국의 압축성장¶
이론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데이터의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이제 실제 각국의 성장 경험을 들여다보며 솔로우 모형의 예측이 얼마나 들어맞는지, 그리고 한국의 경험이 그 안에서 어떻게 자리매김되는지를 살펴보자. 먼저 수렴 가설을 정면으로 검증한다. 솔로우 모형이 옳다면 1960년에 가난했던 나라일수록 그 이후 더 빠르게 성장했어야 한다.
다음 코드는 펜 월드 테이블(Penn World Table)의 국가별 장기 데이터를 이용해, 가로축에 1960년의 초기 1인당 GDP를, 세로축에 1960년부터 2019년까지의 연평균 성장률을 두고 111개국을 산점도로 그린다. 두 축의 관계가 우하향한다면(가난한 나라일수록 빨리 성장) 절대적 수렴의 증거가 된다. 가로축은 소득의 배수 관계를 잘 보이도록 로그 척도로 그린다. 한국이 이 그림에서 어디에 위치하는지를 특히 주목하자.
import io, requests, pandas as pd, numpy as np
raw=requests.get('https://www.rug.nl/ggdc/docs/pwt100.xlsx',timeout=120,headers={'User-Agent':'Mozilla/5.0'}).content
pwt=pd.read_excel(io.BytesIO(raw), sheet_name='Data')
pwt['ypc']=pwt['rgdpo']/pwt['pop'] # 1인당 실질GDP(산출측면)
y0,y1=1960,2019
a=pwt[pwt['year']==y0][['countrycode','country','ypc']].rename(columns={'ypc':'y0'})
b=pwt[pwt['year']==y1][['countrycode','ypc']].rename(columns={'ypc':'y1'})
d=a.merge(b,on='countrycode').dropna()
d=d[(d['y0']>0)&(d['y1']>0)]
d['growth']=(np.log(d['y1'])-np.log(d['y0']))/(y1-y0)*100 # 연평균 성장률(%)
print(f'표본 국가 수: {len(d)}')
kor=d[d['countrycode']=='KOR']
if len(kor): print(f"한국: {y0}년 1인당GDP {kor['y0'].iloc[0]:,.0f} → 연평균 성장률 {kor['growth'].iloc[0]:.1f}%")
fig, ax=plt.subplots(figsize=(10,6))
ax.scatter(d['y0'],d['growth'],s=28,color='#6b7280',alpha=0.6,edgecolor='none')
ax.set_xscale('log')
if len(kor):
ax.scatter(kor['y0'],kor['growth'],s=160,color='#d62728',edgecolor='k',zorder=5)
ax.annotate('한국',(kor['y0'].iloc[0],kor['growth'].iloc[0]),xytext=(8,6),textcoords='offset points',fontweight='bold',color='#b91c1c')
lx=np.log10(d['y0']); coef=np.polyfit(lx,d['growth'],1)
xs=np.linspace(lx.min(),lx.max(),50); ax.plot(10**xs,np.polyval(coef,xs),color='#2563eb',lw=2,label='추세선')
ax.set_title(f'수렴 가설: {y0}년 초기소득 vs {y0}~{y1} 연평균 성장률',fontweight='bold')
ax.set_xlabel(f'{y0}년 1인당 GDP (로그축)'); ax.set_ylabel(f'{y0}~{y1} 연평균 성장률 (%)')
ax.legend(); ax.grid(True,alpha=0.3,which='both')
plt.tight_layout(); plt.show()표본 국가 수: 111
한국: 1960년 1인당GDP 1,256 → 연평균 성장률 6.0%

그림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두 겹이다. 먼저 전체 111개국의 점구름을 보면, 1960년 초기 소득과 이후 성장률 사이에 뚜렷하고 강한 우하향 관계는 보이지 않는다. 가난하게 출발한 많은 나라들이 좀처럼 따라잡지 못한 채 낮은 성장에 머물렀고, 몇몇은 오히려 뒷걸음질쳤다. 이는 전 세계를 뭉뚱그린 절대적 수렴은 데이터에서 관측되지 않는다는, 성장경제학에서 잘 확립된 사실을 확인해 준다. 초기에 가난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빠른 성장이 보장되지는 않는 것이다. 솔로우 모형의 관점에서 이는 놀랄 일이 아니다. 각 나라가 저축률·인구증가·인적자본·제도에서 크게 다르다면 저마다 다른 정상상태를 향해 달리므로, 초기 소득만으로 성장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구름 속에서 한국은 추세선을 한참 벗어난 뚜렷한 이례치(outlier)로 솟아 있다. 한국은 1960년 1인당 GDP가 약 1,256달러로 세계에서 손꼽히게 가난한 축에 속했음에도, 이후 약 60년간 연평균 6.0%라는 경이적인 1인당 성장률을 기록했다. 그림에서 한국의 점은 비슷한 초기 소득을 가졌던 다른 나라들보다 압도적으로 높은 위치, 곧 추세선 위쪽 멀찍이 떨어진 곳에 찍힌다. 한국뿐 아니라 대만·홍콩·싱가포르 같은 동아시아 경제들도 비슷하게 이 상단에 몰려 있어, 이들이 하나의 예외적 집단을 이룸을 보여준다.
이 대비가 주는 해석은 이렇다. 무조건적 수렴은 세계 전체로 보면 약하거나 성립하지 않지만, 적절한 조건을 갖춘 나라에서는 조건부 수렴이 강력하게 작동한다. 동아시아, 그중에서도 한국은 높은 저축·투자율, 급속히 축적된 인적자본, 수출을 통한 세계시장과의 연결, 그리고 (1장에서 강조한) 재산권과 계약을 뒷받침한 제도적 토대를 갖춤으로써, 낮은 초기 소득이 약속하는 '따라잡기’의 잠재력을 실제로 실현해 낸 조건부 수렴의 대표적 성공 사례다. 다시 말해 한국의 기적은 경제법칙을 거스른 것이 아니라, 그 법칙이 요구하는 조건을 유례없이 충실히 충족시킨 결과였다.
수렴이 실현되려면 자본이 빠르게 쌓여야 한다. 그렇다면 한국의 성장은 실제로 얼마나 자본축적에 기대었는가? 다음 코드는 다시 펜 월드 테이블에서 한국의 노동자 1인당 산출과 노동자 1인당 자본을 1953년부터 2019년까지 추적하여, 두 계열을 로그 척도로 함께 그린다. 로그 척도에서 직선의 기울기가 곧 성장률이므로, 두 계열이 얼마나 가파르게, 또 얼마나 나란히 올라갔는지를 보면 자본심화(capital deepening)의 강도를 한눈에 가늠할 수 있다.
kdf=pwt[(pwt['countrycode']=='KOR')].copy()
kdf['y_per_worker']=kdf['rgdpo']/kdf['emp'] # 노동자당 산출
kdf['k_per_worker']=kdf['cn']/kdf['emp'] # 노동자당 자본
kdf=kdf.dropna(subset=['y_per_worker','k_per_worker'])
first,last=kdf.iloc[0],kdf.iloc[-1]
print(f"한국 노동자당 산출: {first['year']:.0f}년 {first['y_per_worker']:,.0f} → {last['year']:.0f}년 {last['y_per_worker']:,.0f}")
print(f"한국 노동자당 자본: {first['year']:.0f}년 {first['k_per_worker']:,.0f} → {last['year']:.0f}년 {last['k_per_worker']:,.0f} (자본 심화)")
fig, ax=plt.subplots(figsize=(10,5.5))
ax.plot(kdf['year'],kdf['y_per_worker'],color='#2563eb',lw=2.4,label='노동자당 산출 (Y/L)')
ax.plot(kdf['year'],kdf['k_per_worker'],color='#dc2626',lw=2.4,label='노동자당 자본 (K/L)')
ax.set_yscale('log')
ax.set_title('한국의 자본 심화: 노동자당 자본과 산출의 동반 성장 (PWT)',fontweight='bold')
ax.set_xlabel('연도'); ax.set_ylabel('노동자당 가치 (로그축, 2017 국제달러)'); ax.legend(); ax.grid(True,alpha=0.3,which='both')
plt.tight_layout(); plt.show()한국 노동자당 산출: 1953년 3,809 → 2019년 80,702
한국 노동자당 자본: 1953년 35,388 → 2019년 416,609 (자본 심화)

그림의 두 계열은 반세기가 넘는 기간 동안 거의 끊김 없이 가파르게 상승한다. 노동자 1인당 산출은 1953년 약 3,809달러에서 2019년 약 80,702달러로 무려 21배가 되었고, 노동자 1인당 자본은 같은 기간 약 35,388달러에서 416,609달러로 약 12배로 불어났다. 연율로 환산하면 1인당 산출은 매년 약 4.7%, 1인당 자본은 매년 약 3.8%씩 성장한 셈이다. 로그 척도에서 두 선이 대체로 나란히 우상향한다는 것은, 산출이 늘어나는 내내 노동자 한 사람이 다루는 자본의 양도 함께 꾸준히 두터워졌음을 뜻한다. 이것이 바로 자본심화(capital deepening), 곧 노동자 1인당 자본이 증가하는 과정이며, 한국 고도성장의 눈에 띄는 특징이었다.
이 그림을 12.2절의 성장회계와 연결해 해석해 보자. 1인당 성장식 에 관측치 , 와 자본분배율 을 대입하면, 자본심화가 기여한 몫은 포인트이고, 나머지인 솔로우 잔차, 곧 총요소생산성의 기여는 포인트로 어림된다. 즉 한국의 성장에서 자본축적이 결정적 동력이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이야기가 완결되지 않으며 생산성 향상이 상당한 몫을 함께 담당했다. (실제 정밀한 성장회계 연구들은 자본과 TFP의 상대적 비중을 두고 견해가 갈리지만, 두 요인이 모두 중요했다는 데에는 폭넓은 공감대가 있다.)
여기서 솔로우 모형의 냉정한 경고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자본의 한계생산은 체감하므로, 자본만을 계속 쌓아 올리는 성장은 반드시 정상상태에 부딪혀 둔화될 수밖에 없다. 1994년 폴 크루그먼(Paul Krugman)은 동아시아의 성장이 지나치게 요소 투입, 특히 자본 축적에 의존한다고 지적하며 그 지속가능성에 의문을 던졌다. 실제로 한국을 비롯한 선발 국가들은 소득이 높아질수록 자본심화만으로 얻을 수 있는 성장의 여지가 줄어들며, 성장률이 자연스럽게 낮아지는 국면에 들어섰다. 앞으로의 지속적 성장은 더 많은 기계가 아니라 더 나은 기술, 더 숙련된 인력, 더 효율적인 제도, 곧 TFP와 인적자본의 향상에 달려 있다. 이 점에서 한국의 경험은 1장에서 강조한 제도의 역할을 다시 확인해 준다. 재산권 보호, 계약의 집행, 개방적인 시장, 교육에 대한 투자와 같은 제도적 기반이 없었다면, 아무리 높은 저축률도 자본을 생산적으로 배분하지 못했을 것이며 수렴은 실현되지 않았을 것이다.
12.5 성장의 원천 심화: 사람, 아이디어, 그리고 지속가능성¶
솔로우 모형은 장기 성장의 궁극적 원천이 물적 자본이 아니라 생산성(기술)에 있음을 밝혔지만, 정작 그 생산성이 어디에서, 어떻게 오는지는 모형 바깥의 ‘외생적’ 요소로 남겨 두었다. 이 절에서는 그 빈칸을 메우는 세 갈래의 심화 논의, 곧 인적자본, 아이디어와 내생적 성장, 그리고 지속가능성을 살펴본다.
첫째는 **인적자본(human capital)**이다. 지금까지의 자본은 기계와 건물 같은 물적 자본이었지만, 노동자 자신에게 체화된 지식·기능·건강 또한 생산성을 높이는 축적된 자본이다. 교육과 훈련, 그리고 건강에 대한 투자는 물적 투자와 마찬가지로 현재의 소비를 미루어 미래의 산출을 늘리는 행위다. 솔로우 모형을 인적자본으로 확장하면 국가 간 소득 격차를 훨씬 잘 설명할 수 있는데, 물적 자본만으로는 부유한 나라와 가난한 나라의 소득차가 이론이 허용하는 것보다 지나치게 크기 때문이다. 인적자본은 이 간극을 메운다. 한국의 압축성장에서 세계적으로도 유례없이 높은 교육열과 문해율, 그리고 급속히 확대된 중등·고등교육은 자본심화와 나란히 성장을 떠받친 두 번째 기둥이었다. 잘 교육된 노동력이 없었다면 도입된 기계와 기술을 효과적으로 다루지 못했을 것이고, TFP의 향상도 그만큼 더뎠을 것이다.
둘째는 **기술진보(technological progress)와 내생적 성장(endogenous growth)**이다. 솔로우 모형에서 기술진보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외생적 선물이었지만, 현실에서 새로운 기술과 아이디어는 기업과 정부가 의도적으로 자원을 투입하는 연구개발(R&D)의 산물이다. 폴 로머(Paul Romer)가 1990년 무렵 정립한 내생적 성장 이론은, 아이디어가 물적 재화와 근본적으로 다른 성질을 지닌다는 통찰에서 출발한다. 하나의 사과는 한 사람이 먹으면 사라지는 경합재(rival good)이지만, 하나의 아이디어(예컨대 미적분이나 반도체 설계 원리)는 누군가 사용해도 사라지지 않고 무한히 많은 사람이 동시에 쓸 수 있는 비경합재(nonrival good)다. 바로 이 비경합성 때문에 지식은 축적될수록 한계생산이 체감하지 않고, 오히려 새로운 아이디어가 또 다른 아이디어를 낳는 선순환을 일으킬 수 있다. 내생적 성장 이론은 이 지식 축적의 자기증식적 성질이야말로 정상상태의 벽을 넘어 지속적 성장을 가능케 하는 힘이라고 본다. 이는 왜 R&D 투자, 특허를 통한 유인 부여, 대학과 기초과학에 대한 지원이 장기 성장정책의 핵심이 되는지를 설명한다.
셋째는 성장의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이다. 성장이 인류 후생의 열쇠라 해도, 그것이 유한한 환경과 자원의 토대 위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외면할 수 없다. 화석연료의 고갈, 기후변화, 생태계의 훼손은 무한한 자본·자원 투입에 의존하는 성장이 물리적 한계에 부딪힐 수 있음을 경고한다. 그러나 성장이론의 통찰은 여기서도 유효하다. 성장의 궁극적 원천이 물적 투입의 양이 아니라 아이디어와 생산성이라면, 더 적은 자원으로 더 많은 가치를 만들어내는 기술, 곧 에너지 효율과 재생에너지, 자원순환 기술의 진보를 통해 성장과 지속가능성을 양립시킬 여지가 있다. 지속가능한 성장이란 자원을 덜 쓰는 정체가 아니라, 자원 생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TFP를 끌어올리는 성장이어야 한다는 것이 현대 성장경제학과 환경경제학이 공유하는 지향점이다.
이 장의 요약¶
이 장은 한 나라 국민의 생활수준을 장기적으로 결정하는 경제성장의 논리를 다루었다. 첫째, 성장률의 작은 차이는 복리로 누적되어 세대를 거치며 나라 사이에 거대한 생활수준 격차를 낳는다. 70의 법칙에 따라 성장률 인 경제의 소득 배가기간은 약 년이며, 이 단순한 어림셈이 왜 정책 담당자가 1%포인트의 성장률에 매달리는지를 설명한다.
둘째, 성장회계는 총생산 증가율을 자본기여 , 노동기여 , 그리고 총요소생산성(TFP)의 증가율 로 분해한다. 관측되지 않는 TFP는 나머지를 역산한 솔로우 잔차로 측정되며, 솔로우의 원 연구는 성장의 대부분이 자본이 아닌 생산성에서 옴을 보였다.
셋째, 솔로우 모형은 자본축적 방정식 로부터 투자와 감가상각이 균형을 이루는 정상상태 를 도출한다. 자본의 한계생산 체감 때문에 경제는 어디서 출발하든 정상상태로 수렴하며, 그곳에서 순수한 자본축적에 의한 1인당 성장은 멈춘다. 저축률 상승은 소득의 수준을 높이는 수준효과를 낳지만 영구적 성장효과는 없고, 소비를 극대화하는 저축률은 자본분배율과 같은 황금률 에서 달성된다.
넷째, 실증적으로 세계 전체의 절대적 수렴은 약하지만,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는 높은 저축·인적자본·제도를 갖춘 조건부 수렴의 성공 사례다. 한국은 1953년 이후 노동자 1인당 산출이 21배, 1인당 자본이 12배로 늘어난 강력한 자본심화를 경험했으나, 자본만으로는 정상상태에 갇히므로 지속적 성장은 결국 인적자본과 TFP, 곧 사람과 아이디어의 향상에 달려 있다.
핵심 용어¶
| 한국어 | English | 정의 |
|---|---|---|
| 경제성장 | Economic growth | 1인당 실질 총생산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현상 |
| 70의 법칙 | Rule of 70 | 성장률 (%)인 양의 배가기간이 약 년이라는 근사 법칙 |
| 성장회계 | Growth accounting | 총생산 증가율을 자본·노동의 기여와 총요소생산성의 기여로 분해하는 기법 |
| 총요소생산성 | Total factor productivity (TFP) | 주어진 자본과 노동을 산출로 바꾸는 효율성의 척도 |
| 솔로우 잔차 | Solow residual | 총생산 증가율에서 자본·노동 기여를 뺀 나머지, TFP 증가율의 추정치 |
| 솔로우 모형 | Solow model | 자본축적과 감가상각의 동학으로 장기 성장을 설명하는 모형 |
| 자본축적 방정식 | Capital accumulation equation | 1인당 자본의 변화를 나타내는 식 |
| 정상상태 | Steady state | 1인당 자본이 더 이상 변하지 않는 상태 |
| 자본의 한계생산 체감 | Diminishing marginal product of capital | 자본이 늘수록 자본 한 단위의 추가 산출이 줄어드는 성질 |
| 손익분기 투자 | Break-even investment | 자본 수준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투자 |
| 수준효과 | Level effect | 저축률 상승이 정상상태 소득의 수준을 한 번 높이는 효과 |
| 성장효과 | Growth effect | 정상상태의 성장률 자체를 영구히 높이는 효과(솔로우 모형에는 없음) |
| 황금률 | Golden rule | 정상상태 소비를 극대화하는 자본 수준, 조건 |
| 수렴 | Convergence | 초기에 가난한 경제가 더 빨리 성장하여 소득 격차가 좁혀지는 현상 |
| 조건부 수렴 | Conditional convergence | 저축률·제도 등 조건이 비슷한 나라끼리 각자의 정상상태로 수렴함 |
| 자본심화 | Capital deepening | 노동자 1인당 자본이 증가하는 과정 |
| 인적자본 | Human capital | 교육·훈련·건강을 통해 노동자에게 체화된 지식과 기능 |
| 내생적 성장 | Endogenous growth | 지식·아이디어의 축적을 모형 내부에서 설명하여 지속적 성장을 낳는 이론 |
| 비경합재 | Nonrival good | 한 사람의 사용이 다른 사람의 사용을 배제하지 않는 재화(예: 아이디어) |
연습문제¶
개념
솔로우 모형에서 저축률의 상승이 정상상태 소득의 '수준’은 높이지만 장기 '성장률’은 높이지 못하는 이유를 자본의 한계생산 체감과 연결하여 설명하라.
절대적 수렴과 조건부 수렴의 차이를 정의하고, 왜 세계 전체 데이터에서는 전자가 약하게 나타나는데 한국과 동아시아에서는 후자가 강하게 작동했는지 서술하라.
솔로우 잔차가 순수한 기술진보와 정확히 같지 않은 까닭을 세 가지 이상 들고, 아브라모비츠가 이를 "무지의 척도"라 부른 의미를 설명하라.
계산
어떤 나라의 1인당 소득이 매년 각각 (a) 2%, (b) 3.5%, (c) 7%로 성장한다고 하자. 70의 법칙으로 각 경우의 배가기간을 구하라. 또 (a)와 (c)에서 오늘 1,000만 원인 소득이 35년 뒤 각각 얼마가 되는지 근사하라.
1인당 생산함수가 , 저축률 , 감가상각률 이다. 정상상태 자본 와 1인당 산출 , 그리고 1인당 소비 를 구하라.
문제 5의 경제에서 저축률이 에서 으로 오르면 새 정상상태 자본과 산출은 각각 얼마가 되는가? 이 변화가 수준효과인지 성장효과인지 밝히고, 저축률 상승 직후와 새 정상상태 도달 이후의 성장률 경로를 말로 설명하라.
콥-더글러스 생산함수 에서 황금률 저축률이 임을 정상상태 소비 를 에 대해 미분하여 유도하라. 이면 황금률 저축률은 얼마인가?
데이터
본문 C3의 수치를 이용하라. 한국의 노동자 1인당 산출은 1953년 3,809달러에서 2019년 80,702달러로, 1인당 자본은 35,388달러에서 416,609달러로 늘었다. 두 변수의 66년간 연평균 성장률을 각각 계산하고, 자본분배율 을 가정하여 성장식 로부터 이 기간의 평균 TFP 증가율(솔로우 잔차)을 추정하라.
본문 C2에 따르면 한국은 1960년 1인당 GDP가 약 1,256달러였고 이후 연평균 6.0%로 성장했다. 70의 법칙을 이용해 소득이 대략 몇 년마다 두 배가 되었는지 구하고, 1960년부터 2019년까지 59년 동안 소득이 약 몇 배가 되었는지 근사하라.
본문의 수렴 산점도(C2)에서 한국이 추세선 위쪽 멀리 위치하는 이례치로 나타나는 이유를, 조건부 수렴의 관점에서 한국이 갖추었던 조건(저축·투자율, 인적자본, 제도, 대외개방)과 연결하여 데이터에 근거해 서술하라.
서술
크루그먼은 1994년 동아시아 성장이 요소 투입, 특히 자본축적에 지나치게 의존한다고 비판하며 그 지속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솔로우 모형의 정상상태 개념을 이용해 그의 우려의 논리를 설명하고, 그럼에도 한국이 지속적 성장을 이어가려면 무엇에 투자해야 하는지 인적자본과 TFP, 내생적 성장의 관점에서 논하라.
아이디어(지식)의 비경합성이 왜 물적 자본과 달리 지속적 성장의 원천이 될 수 있는지 설명하고, 이 통찰이 R&D 지원·특허·기초과학 투자 같은 성장정책을 정당화하는 방식을 서술하라. 나아가 이 관점이 성장과 환경 지속가능성의 양립 가능성에 대해 시사하는 바를 논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