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심의 어느 겨울 아침을 상상해 보자. 초미세먼지 농도가 나쁜 수준으로 치솟아 사람들은 마스크를 쓰고 출근하고, 노약자는 외출을 삼가라는 안내 문자가 울린다. 이 매연을 내뿜은 것은 발전소, 공장, 그리고 도로를 가득 메운 자동차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이 있다. 전기를 쓰는 사람도, 물건을 만든 공장도, 차를 모는 운전자도 각자 자신의 이익을 냉정하게 계산해 ‘합리적으로’ 행동했다는 것이다. 발전소는 전기를 팔아 이윤을 얻고, 소비자는 값싼 전기를 소비해 만족을 얻는다. 우리가 앞선 장들에서 배운 대로라면, 이렇게 모두가 자기 이익을 좇을 때 '보이지 않는 손’이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해 사회 전체의 후생을 극대화해야 한다. 그런데 왜 우리는 매년 겨울마다 숨쉬기 어려운 공기를 마셔야 하는가?
답은 이렇다. 발전소가 전기 한 단위를 더 생산할 때 치르는 '사적 비용(연료비, 인건비)'에는, 그 발전이 만들어 내는 미세먼지 때문에 수백만 시민이 겪는 건강 손상과 조기 사망의 비용이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시장 가격은 이 숨은 비용을 반영하지 않으므로, 발전소는 사회가 원하는 것보다 더 많이 생산하고 시민들은 대가를 치른다. 이처럼 시장이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지 못하는 상황을 시장 실패(market failure) 라 부른다. 이 장은 보이지 않는 손이 어긋나는 대표적인 세 가지 경로—외부효과, 공공재, 정보 비대칭—를 자세히 살펴보고, 정부가 이를 어떻게 교정할 수 있는지, 그리고 정부 개입 자체도 실패할 수 있음을 검토한다.
10.1 시장 실패란 무엇인가¶
우리는 앞서 완전경쟁 시장이 특정한 조건 아래에서 사회적으로 효율적인 결과—즉 소비자잉여와 생산자잉여의 합인 총잉여(total surplus) 가 극대화되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을 배웠다. 후생경제학 제1정리(the first theorem of welfare economics)라 불리는 이 명제는 근대 경제학의 가장 강력한 통찰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이 정리는 무료로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몇 가지 까다로운 전제 위에 서 있다. 시장에 참여하는 어느 누구도 가격을 좌우할 만큼 크지 않아야 하고(가격수용자), 거래되는 모든 것에 대해 재산권이 명확히 설정되어 있어야 하며, 거래 당사자들이 상품의 품질에 대해 동일한 정보를 가지고 있어야 하고, 한 사람의 거래가 제3자에게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아야 한다. 현실에서 이 전제들 가운데 하나라도 무너지면, 개인의 합리적 선택이 사회적으로 비효율적인 결과로 귀결된다. 이것이 시장 실패의 본질이다.
여기서 '실패’라는 단어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시장 실패는 시장이 아예 작동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시장은 매우 활발하게 작동한다—다만 그 결과가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데 실패한다는 뜻이다. 미세먼지를 내뿜는 발전소도, 레몬(불량 중고차)을 파는 판매상도 모두 활발히 거래한다. 문제는 그 거래의 결과로 만들어지는 균형 수량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수량과 어긋난다는 데 있다. 따라서 시장 실패의 분석은 언제나 '시장이 도달하는 균형’과 '사회적으로 최적인 배분’을 나란히 놓고 그 간극을 측정하는 작업이다.
경제학은 시장 실패를 크게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한다. 이 장은 그중 앞의 세 가지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네 번째인 시장지배력은 앞서 독과점을 다룬 장과 이어진다.
첫째, 외부효과(externality) 는 한 경제 주체의 행동이 시장 거래를 거치지 않고 제3자에게 편익이나 비용을 발생시키는 경우다. 발전소의 매연은 인근 주민에게 비용을(부정적 외부효과), 이웃집의 아름다운 정원은 지나가는 사람에게 편익을(긍정적 외부효과) 준다. 어느 쪽이든 가격이 이 영향을 반영하지 못하므로 배분이 왜곡된다.
둘째, 공공재(public good) 는 여러 사람이 동시에 소비할 수 있고(비경합성) 대가를 치르지 않은 사람을 배제하기 어려운(비배제성) 재화다. 국방, 등대, 깨끗한 공기가 그 예다. 이런 재화는 시장에 맡겨 두면 아무도 값을 내려 하지 않아 과소 공급된다.
셋째, 정보 비대칭(asymmetric information) 은 거래 당사자 한쪽이 상대방보다 상품의 품질이나 자신의 행동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가진 경우다. 중고차 판매상은 차의 결함을 알지만 구매자는 모르고, 보험 가입자는 자신의 위험을 알지만 보험사는 모른다. 이 불균형은 좋은 상품이 시장에서 밀려나거나 계약 후 행동이 왜곡되는 결과를 낳는다.
넷째, 시장지배력(market power) 은 독점·과점 기업이 가격을 인위적으로 끌어올려 생산을 제약하는 경우로, 이 역시 사중손실을 낳는다.
아래 표는 이 네 유형을 한눈에 정리한 것이다.
| 시장 실패 유형 | 깨지는 전제 | 대표 사례 | 시장 결과 |
|---|---|---|---|
| 외부효과 | 제3자 영향 없음 | 매연, 백신, 교육 | 부정적이면 과잉, 긍정적이면 과소 |
| 공공재 | 배제 가능성 | 국방, 등대, 기초연구 | 무임승차로 과소 공급 |
| 정보 비대칭 | 대칭적 정보 | 중고차, 보험, 노동시장 | 역선택·도덕적 해이 |
| 시장지배력 | 가격수용 | 통신·플랫폼 독과점 | 가격 인상·과소 생산 |
이 장의 나머지는 각 유형을 하나씩 해부하면서, 시장이 왜 어긋나는지를 직관과 수식으로 밝히고, 정부와 사회가 이를 어떻게 바로잡을 수 있는지를 검토한다.
10.2 외부효과: 가격에 담기지 않는 비용과 편익¶
외부효과를 이해하는 열쇠는 '비용’과 '편익’을 각각 두 가지 층위로 나누어 보는 것이다. 어떤 경제 행위가 발생시키는 비용은 크게 그 행위자가 직접 부담하는 사적 비용(private cost) 과, 행위자와 무관한 제3자가 떠안는 외부 비용(external cost) 으로 나뉜다. 이 둘을 합한 것이 사회 전체가 치르는 사회적 비용(social cost) 이다. 즉 사회적 비용은 사적 비용에 외부 비용을 더한 값이며, 수식으로는 사회적 한계비용(MSC) 사적 한계비용(MPC) 외부 한계비용(EMC)으로 쓴다. 편익도 마찬가지여서, 사회적 한계편익(MSB)은 사적 한계편익(MPB)에 외부 한계편익(EMB)을 더한 것이다.
시장 참여자는 오직 자신의 사적 비용과 사적 편익만을 계산해 의사결정을 내린다. 발전소는 연료비와 설비비만 고려할 뿐 매연이 유발하는 시민의 건강 손실은 고려하지 않는다. 바로 여기서 왜곡이 발생한다. 시장은 사적 한계편익과 사적 한계비용이 일치하는 지점에서 균형을 이루지만(), 사회가 진정으로 원하는 최적점은 사회적 한계편익과 사회적 한계비용이 일치하는 지점()이다. 외부효과가 존재하면 이 두 조건이 어긋나므로, 시장 균형 수량은 사회적 최적 수량에서 벗어난다.
부정적 외부효과(negative externality) 의 경우—오염, 소음, 교통 혼잡처럼 제3자에게 비용을 지우는 경우—외부 비용이 양(+)이므로 사회적 한계비용이 사적 한계비용보다 높다. 시장은 사적 비용만 보고 생산하므로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수준보다 과잉생산(overproduction) 한다. 반대로 긍정적 외부효과(positive externality) 의 경우—백신 접종, 교육, 신기술 연구개발처럼 제3자에게 편익을 주는 경우—외부 편익이 양이므로 사회적 한계편익이 사적 한계편익보다 높다. 시장은 사적 편익만 보고 소비·생산하므로 사회적 최적보다 과소생산(underproduction) 한다. 어느 쪽이든 핵심은 같다. 가격이 진실을 말하지 않을 때, 개인의 합리적 선택은 사회적 낭비로 이어진다.
이제 부정적 외부효과를 구체적인 숫자로 분석해 보자. 아래 코드는 어떤 오염 산업의 시장을 모형화한다. 수요곡선은 소비자의 지불의사를 나타내며 동시에 사회적 한계편익 로 주어진다(이 재화의 소비에는 외부 편익이 없다고 가정). 공급곡선은 기업의 사적 한계비용 다. 그런데 이 산업은 생산 한 단위마다 20원어치의 외부 비용(매연 피해)을 사회에 지운다. 따라서 사회적 한계비용은 가 된다. 코드는 시장 균형과 사회적 최적을 각각 구하고, 그 차이에서 발생하는 사중손실과 이를 교정하는 피구세의 크기를 계산해 그림으로 보여 준다. 우리가 확인하려는 것은 '외부 비용이 균형을 얼마나 왜곡하며, 그 낭비를 숫자로 얼마나 되는가’다.
import numpy as np
import matplotlib.pyplot as plt
import matplotlib.font_manager as fm
import logging
_av={f.name for f in fm.fontManager.ttflist}
for _f in ['Malgun Gothic','AppleGothic','NanumGothic','Noto Sans CJK KR','Noto Sans KR']:
if _f in _av: plt.rcParams['font.family']=_f; break
plt.rcParams['axes.unicode_minus']=False
plt.rcParams['mathtext.fontset']='dejavusans' # 로그축 지수의 마이너스(U+2212) 글리프 보장
import warnings; warnings.filterwarnings('ignore')
logging.getLogger('matplotlib').setLevel(logging.ERROR)
# 수요=사회적한계편익 MPB=100-Q, 사적한계비용 MPC=20+Q, 외부한계비용 EMC=20(일정)
# 사회적한계비용 MSC=MPC+EMC=40+Q
Qm=(100-20)/2; Pm=100-Qm # 시장(사적) 균형: Q=40, P=60
Qs=(100-40)/2; Ps=100-Qs # 사회적 최적: Q=30, P=70
dwl=0.5*(Qm-Qs)*((40+Qm)-(100-Qm))
print(f'시장 균형(외부효과 무시): Q={Qm:.0f}, P={Pm:.0f} → 과잉생산')
print(f'사회적 최적: Q={Qs:.0f}')
print(f'과잉생산으로 인한 사중손실(DWL) = {dwl:.0f}')
print(f'피구세 = 단위당 외부비용 = 20 → 부과 시 MPC가 MSC로 이동, 시장이 사회적 최적을 달성')
Q=np.linspace(0,100,200)
fig, ax=plt.subplots(figsize=(9,6.5))
ax.plot(Q,100-Q,color='#2563eb',lw=2.4,label='수요 = 사회적 한계편익(MPB)')
ax.plot(Q,20+Q,color='#16a34a',lw=2.2,label='사적 한계비용(MPC) = 공급')
ax.plot(Q,40+Q,color='#dc2626',lw=2.2,ls='--',label='사회적 한계비용(MSC)=MPC+외부비용')
ax.plot(Qm,Pm,'ko',ms=8); ax.plot(Qs,Ps,'ks',ms=8)
ax.annotate(f'시장균형\n(Q={Qm:.0f})',(Qm,Pm),xytext=(8,-22),textcoords='offset points',fontweight='bold')
ax.annotate(f'사회적 최적\n(Q={Qs:.0f})',(Qs,Ps),xytext=(-52,6),textcoords='offset points',color='#b91c1c',fontweight='bold')
ax.fill([Qs,Qm,Qm],[100-Qs,100-Qm,40+Qm],color='#f59e0b',alpha=0.4)
ax.annotate('사중손실',(Qm-3,100-Qm+6),color='#b45309')
ax.set_title('부정적 외부효과: 시장은 사회적 최적보다 과잉생산한다',fontweight='bold')
ax.set_xlabel('수량 Q'); ax.set_ylabel('가격·비용'); ax.set_xlim(0,90); ax.set_ylim(0,110); ax.legend()
plt.tight_layout(); plt.show()시장 균형(외부효과 무시): Q=40, P=60 → 과잉생산
사회적 최적: Q=30
과잉생산으로 인한 사중손실(DWL) = 100
피구세 = 단위당 외부비용 = 20 → 부과 시 MPC가 MSC로 이동, 시장이 사회적 최적을 달성

출력과 그림은 외부효과의 논리를 정확한 숫자로 드러낸다. 먼저 시장 균형은 사적 조건 , 즉 를 풀어 , 원에서 형성된다. 기업은 매연 피해를 비용으로 인식하지 않으므로, 이 지점까지 거리낌 없이 생산한다. 반면 사회적 최적은 사회적 조건 , 즉 를 풀어 에서 달성된다. 두 수량을 비교하면 시장은 사회적 최적보다 정확히 10단위를 과잉생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림에서 파란 수요선과 초록 사적 비용선이 만나는 검은 원(시장균형, )이 빨간 점선(사회적 한계비용)과 수요선이 만나는 검은 사각형(사회적 최적, )보다 오른쪽에 놓여 있는 것이 바로 이 과잉생산을 시각적으로 보여 준다.
이 과잉생산이 초래하는 낭비가 그림의 주황색 삼각형, 곧 사중손실(deadweight loss, DWL) 이다. 사회적 최적 수량 30을 넘어서 40까지 생산되는 각 단위에 대해, 사회가 치르는 한계비용(빨간 선)이 사회가 얻는 한계편익(파란 선)을 초과한다. 이 초과분을 모두 더한 것이 사중손실이며, 삼각형의 넓이로 계산하면 밑변 , 높이는 최적점에서 시장점까지 와 가 벌어지는 폭이 20이므로 원이다. 즉 외부효과를 방치할 때 이 시장은 매 기간 100원어치의 순사회손실을 만들어 낸다.
해결책은 우아하리만치 단순하다. 단위당 외부 비용과 정확히 같은 크기, 곧 20원의 세금을 생산자에게 부과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기업의 사적 한계비용 곡선이 위로 20만큼 이동해 사회적 한계비용 곡선과 겹쳐지고, 기업은 이제 매연 피해까지 '자신의 비용’으로 느끼며 의사결정을 내리게 된다. 그 결과 시장 균형은 저절로 , 즉 사회적 최적으로 이동하고 사중손실은 사라진다. 오염의 외부 비용을 가격 안으로 끌어들이는 이 세금을 피구세(Pigouvian tax) 라 부른다. 다음 절에서 그 원리와 대안들을 자세히 살펴보자.
외부효과의 교정 1: 피구세와 명령·통제¶
앞의 계산이 보여 준 교정 수단은 외부 비용을 유발자에게 되돌려 주는 방식이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외부효과의 내부화(internalization) 라 부른다. 외부에 흩어져 있던 비용을 유발자의 의사결정 안으로 '내부화’한다는 뜻이다. 피구세의 원리는 명료하다. 오염 한 단위가 사회에 20원의 피해를 준다면, 오염 한 단위마다 정확히 20원의 세금을 물린다. 그러면 기업이 인식하는 한계비용이 사회적 한계비용과 일치하게 되어, 기업이 사익을 극대화하는 바로 그 선택이 동시에 사회적 최적이 된다. 여기서 피구세의 핵심 설계 원칙이 나온다. 최적 세율은 세수를 극대화하는 수준이 아니라 사회적 최적 산출량에서 평가한 한계 외부 비용과 같은 수준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피구세가 단순한 벌금이나 생산 금지보다 우월한 이유는 그것이 '유연성’을 남겨 두기 때문이다. 정부가 특정 오염 기술을 법으로 금지하는 방식(이를 명령·통제 규제(command-and-control regulation) 라 한다)은 목표 달성이 확실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오염을 값싸게 줄일 수 있는 기업과 비싸게밖에 줄이지 못하는 기업을 구별하지 못한다. 반면 피구세 아래에서는 오염을 싸게 줄일 수 있는 기업은 세금을 내느니 감축을 택하고, 감축이 어려운 기업은 세금을 내고 계속 생산한다. 그 결과 사회 전체의 감축 비용이 최소화된다. 다만 피구세의 현실적 난점도 분명하다. 외부 비용의 정확한 화폐 가치를 측정하기가 극히 어렵고—미세먼지로 인한 조기 사망의 가치를 얼마로 볼 것인가?—오염원이 다수이고 이질적일 때 개별 세율을 매기기가 행정적으로 까다롭다.
긍정적 외부효과에는 대칭적인 처방이 적용된다. 백신이나 교육처럼 사회적 편익이 사적 편익을 초과하는 재화는 시장이 과소 공급하므로, 정부는 세금이 아니라 보조금(subsidy) 을 지급해 소비·생산을 사회적 최적 수준까지 끌어올린다. 한국이 영유아 예방접종을 무료로 제공하고 대학 연구개발에 세액공제를 주는 것이 그 예다. 피구세와 피구보조금은 동전의 양면으로, 둘 다 가격을 조정해 사적 유인과 사회적 최적을 일치시키려는 시도다.
외부효과의 교정 2: 코즈 정리와 배출권 거래제¶
피구는 외부효과를 정부가 세금으로 바로잡아야 할 문제로 보았지만, 시카고 대학의 로널드 코즈는 전혀 다른 각도에서 접근했다. 코즈의 통찰은 이렇다. 외부효과가 비효율을 낳는 근본 원인은 오염 그 자체가 아니라, 오염을 둘러싼 재산권(property rights) 이 명확하지 않다는 데 있다. 강물을 오염시킬 권리가 공장에 있는가, 아니면 깨끗한 강물을 누릴 권리가 어부에게 있는가? 이 권리가 누구에게 있든 명확하게 설정되어 있고, 당사자들이 서로 협상하는 데 드는 비용, 곧 거래비용(transaction cost) 이 충분히 작다면, 당사자들은 자발적 협상을 통해 스스로 효율적인 결과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코즈 정리(Coase theorem) 다.
예를 들어 공장의 오염이 어부에게 100만원의 피해를 주지만, 오염 방지 설비를 다는 데는 60만원이면 된다고 하자. 만약 어부에게 깨끗한 강물에 대한 권리가 있다면 공장은 60만원을 들여 설비를 다는 편이 낫다. 반대로 공장에 오염 권리가 있더라도, 어부가 공장에 60만원과 100만원 사이의 금액—이를테면 80만원—을 지불하고 설비를 달게 하면 양쪽 모두 이득을 본다. 놀랍게도 권리가 누구에게 있든 결과는 동일하게 '설비를 단다’로 수렴한다. 권리의 초기 배분은 누가 돈을 지불하느냐(형평의 문제)만 바꿀 뿐, 최종적으로 도달하는 효율적 결과 자체는 바뀌지 않는다. 이것이 코즈 정리의 가장 반직관적이고 강력한 함의다.
그러나 코즈 정리의 전제인 '낮은 거래비용’은 현실에서 자주 무너진다. 미세먼지 피해자는 수백만 명이고 오염원도 수만 곳인데, 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협상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협상 당사자가 많을수록, 무임승차 유인이 클수록, 정보가 불완전할수록 거래비용은 치솟는다. 그럼에도 코즈의 유산은 결정적이었다. 그는 정부의 역할이 반드시 세금을 매기는 것이 아니라, 재산권을 명확히 설정하고 시장 자체를 창설하는 것일 수도 있음을 보여 주었다. 바로 이 아이디어가 현대의 배출권 거래제(emissions trading system, ETS) 로 이어졌다. 정부가 전체 오염 총량에 상한(cap)을 정하고, 그 총량만큼의 배출권을 발행해 기업들끼리 사고팔게(trade) 하는 이 제도는 '오염할 권리’라는 재산권을 창설한 코즈식 해법이다. 오염을 값싸게 줄이는 기업은 배출권을 팔아 이득을 보고, 감축이 비싼 기업은 배출권을 사서 계속 생산하므로, 사회 전체의 감축 비용이 최소화된다. 한국은 2015년부터 이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10.3 실증: 소득, 탄소, 그리고 지구적 외부효과¶
외부효과 이론은 추상적으로 들리지만, 21세기 인류가 직면한 가장 거대한 시장 실패—기후변화—를 이해하는 핵심 열쇠다. 온실가스 배출은 전형적인 부정적 외부효과이되, 그 규모가 전 지구적이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서울에서 배출한 이산화탄소는 지구 전체의 기후에 영향을 주지만, 그 비용을 서울 시민만 치르는 것이 아니라 전 인류가, 그것도 미래 세대까지 나누어 진다. 시장 가격에는 이 방대한 외부 비용이 거의 반영되지 않으므로, 세계는 사회적 최적보다 훨씬 많은 탄소를 배출한다. 이 절에서는 실제 데이터로 이 외부효과의 규모와 형태를 확인한다.
먼저 소득과 탄소배출의 관계를 살펴보자. 아래 코드는 아워월드인데이터(Our World in Data)의 1인당 이산화탄소 배출 자료와 세계은행(World Bank)의 1인당 GDP 자료를 194개국에 대해 병합하고, 두 변수를 로그-로그 산점도로 그린다. 로그축을 쓰는 이유는 국가 간 소득과 배출량의 편차가 수백 배에 달해, 선형 축으로는 가난한 나라들이 원점 부근에 뭉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확인하려는 질문은 '더 부유한 나라가 정말로 1인당 탄소를 더 많이 배출하는가, 그리고 그 관계는 얼마나 강한가’다.
import io, requests, pandas as pd
co2=pd.read_csv(io.BytesIO(requests.get('https://ourworldindata.org/grapher/co-emissions-per-capita.csv',timeout=60).content))
ccol=[c for c in co2.columns if 'CO' in c and 'capita' in c][0]
co2=co2.dropna(subset=[ccol,'Code'])
co2l=co2.sort_values('Year').groupby('Code').tail(1)
wb=requests.get('https://api.worldbank.org/v2/country/all/indicator/NY.GDP.PCAP.PP.KD?format=json&per_page=400&mrnev=1',timeout=60).json()[1]
gdp=pd.DataFrame([{'Code':d['countryiso3code'],'gdppc':d['value']} for d in wb if d['value']])
m=co2l.merge(gdp,on='Code').dropna(subset=['gdppc',ccol]); m=m[(m['gdppc']>0)&(m[ccol]>0)]
kor=m[m['Code']=='KOR']
print(f'병합 국가 수: {len(m)}')
if len(kor): print(f"한국: 1인당GDP {kor['gdppc'].iloc[0]:,.0f}, 1인당 CO2 {kor[ccol].iloc[0]:.1f}톤")
import numpy as np
fig, ax=plt.subplots(figsize=(10,6))
ax.scatter(m['gdppc'],m[ccol],s=26,color='#6b7280',alpha=0.55,edgecolor='none')
ax.set_xscale('log'); ax.set_yscale('log')
lx=np.log10(m['gdppc']); ly=np.log10(m[ccol]); coef=np.polyfit(lx,ly,1)
xs=np.linspace(lx.min(),lx.max(),50); ax.plot(10**xs,10**np.polyval(coef,xs),color='#dc2626',lw=2,label='추세선')
if len(kor):
ax.scatter(kor['gdppc'],kor[ccol],s=150,color='#d62728',edgecolor='k',zorder=5)
ax.annotate('한국',(kor['gdppc'].iloc[0],kor[ccol].iloc[0]),xytext=(8,6),textcoords='offset points',fontweight='bold',color='#b91c1c')
ax.set_title('소득이 높을수록 1인당 탄소배출이 많다 (외부효과의 규모)',fontweight='bold')
ax.set_xlabel('1인당 GDP (PPP, 로그축)'); ax.set_ylabel('1인당 CO2 배출량 (톤, 로그축)')
ax.legend(); ax.grid(True,alpha=0.3,which='both')
plt.tight_layout(); plt.show()병합 국가 수: 194
한국: 1인당GDP 55,697, 1인당 CO2 11.3톤

산점도는 우상향하는 뚜렷한 양(+)의 관계를 드러낸다. 194개국의 점들이 왼쪽 아래(가난하고 저배출)에서 오른쪽 위(부유하고 고배출)로 흐르며, 빨간 추세선이 이 관계를 요약한다. 로그-로그 축에서 우상향 직선은 소득이 늘수록 배출도 체계적으로 늘어남을 뜻하며, 추세선의 기울기는 소득이 1퍼센트 증가할 때 배출이 몇 퍼센트 증가하는지를 나타내는 탄력성이다. 경제성장과 화석연료 사용이 역사적으로 얼마나 단단히 묶여 있었는지를 이 한 장의 그림이 보여 준다.
한국은 이 그림에서 오른쪽 위, 즉 부유하면서 고배출인 영역에 자리한다. 출력에 따르면 한국의 1인당 GDP는 약 55,697달러(PPP 기준)이고 1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11.3톤이다. 이 수치는 세계 평균을 훌쩍 웃도는 수준으로, 한국이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와 화석연료 의존적 발전 체계를 가진 고소득 국가임을 반영한다. 붉게 강조된 ‘한국’ 점이 추세선보다 다소 위쪽에 놓인다는 것은, 비슷한 소득 수준의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도 한국의 배출 강도가 낮지 않음을 시사한다.
이 그림이 외부효과 이론과 만나는 지점이 결정적이다. 각 나라가 배출하는 탄소는 그 나라의 사적 편익(값싼 에너지, 경제성장)을 위해 배출되지만, 그로 인한 기후 피해라는 외부 비용은 전 지구가 나누어 진다. 어느 나라도 자국 배출의 전 지구적 비용을 온전히 부담하지 않으므로, 모든 나라가 사회적 최적보다 과잉 배출하는 유인을 갖는다. 이것이 다음 절에서 다룰 공유자원 문제의 지구적 판본, 곧 '지구 대기라는 공유지의 비극’이다.
소득과 배출의 국제 비교에 이어, 이번에는 한국 한 나라의 배출이 시간에 따라 어떻게 변해 왔는지를 살펴보자. 아래 코드는 아워월드인데이터 자료에서 한국의 1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가장 이른 기록 연도부터 최근까지 시계열로 그린다. 한 나라의 배출 궤적은 그 나라의 산업화·성장·위기의 역사를 압축한 지문과 같다. 우리가 확인하려는 것은 '한국의 탄소 배출이 언제, 얼마나 가파르게 늘었으며, 성장 경로의 어떤 사건들이 그 궤적에 흔적을 남겼는가’다.
kco2=co2[co2['Code']=='KOR'][['Year',ccol]].dropna()
fig, ax=plt.subplots(figsize=(10,5))
ax.plot(kco2['Year'],kco2[ccol],color='#111827',lw=2)
ax.fill_between(kco2['Year'],0,kco2[ccol],color='#6b7280',alpha=0.12)
ax.axvspan(1997,1998,color='#dc2626',alpha=0.12)
ax.annotate('외환위기',(1997.5,kco2[ccol].max()*0.5),rotation=90,color='#b91c1c',fontsize=9,ha='right')
ax.set_title('한국의 1인당 CO2 배출 추이 (1960~현재)',fontweight='bold')
ax.set_xlabel('연도'); ax.set_ylabel('1인당 CO2 배출량 (톤)'); ax.grid(True,alpha=0.3)
plt.tight_layout(); plt.show()
print(f"한국 1인당 CO2: {kco2['Year'].min():.0f}년 {kco2[ccol].iloc[0]:.2f}톤 → {kco2['Year'].max():.0f}년 {kco2[ccol].iloc[-1]:.2f}톤")
한국 1인당 CO2: 1905년 0.00톤 → 2024년 11.29톤
시계열 그림은 한국 산업화의 극적인 속도를 배출량의 언어로 보여 준다. 출력에 따르면 한국의 1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1905년 사실상 0.00톤에서 2024년 11.29톤으로, 한 세기 남짓 만에 거의 무(無)에서 세계 최상위권 수준으로 치솟았다. 곡선은 대부분의 초기 기간 동안 완만하다가 1960년대 이후, 특히 중화학공업화가 본격화된 1970~1980년대에 가파르게 상승한다. 이는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압축 성장이 곧 압축적 탄소 집약화이기도 했음을 보여 준다.
그림에서 붉게 표시된 1997~1998년 구간에는 곡선이 잠시 꺾이는 흔적이 보인다. 이는 외환위기(IMF 사태)로 경제활동이 급격히 위축되면서 에너지 소비와 배출이 일시적으로 감소한 것이다. 배출량 곡선이 경기 침체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사실 자체가, 탄소 배출이 화석연료 기반 생산활동과 얼마나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는지를 역설적으로 증명한다. 위기가 지나가고 경제가 회복되자 배출은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이 궤적은 한국이 마주한 정책적 도전의 크기를 웅변한다. 무에서 11톤을 향해 100년간 올라온 이 곡선을, 이제는 2050년까지 다시 0을 향해 끌어내려야 한다. 이것이 탄소중립의 과제이며, 앞서 배운 피구세·배출권 거래제 같은 외부효과 교정 수단이 왜 한국 경제에 사활적 의미를 갖는지를 이 한 장의 그림이 말해 준다.
10.4 공공재와 공유자원: 배제와 경합의 문제¶
외부효과가 '가격에 담기지 않는 영향’의 문제라면, 공공재는 '애초에 시장을 통해 팔기 어려운 재화’의 문제다. 경제학은 모든 재화를 두 가지 축으로 분류한다. 하나는 경합성(rivalry)—내가 소비하면 남이 소비할 몫이 줄어드는가—이고, 다른 하나는 배제성(excludability)—대가를 치르지 않은 사람의 소비를 막을 수 있는가—이다. 이 두 축을 교차하면 네 가지 재화 유형이 나온다.
| 배제 가능 | 배제 불가능 | |
|---|---|---|
| 경합적 | 사적 재화 (빵, 옷, 자동차) | 공유자원 (바닷물고기, 목초지) |
| 비경합적 | 클럽재 (케이블TV, 유료 고속도로) | 공공재 (국방, 등대, 깨끗한 공기) |
우리가 시장에서 흔히 거래하는 대부분의 상품은 왼쪽 위, 곧 사적 재화(private good) 다. 빵 한 조각은 내가 먹으면 남이 먹을 수 없고(경합적), 값을 내지 않으면 가질 수 없다(배제 가능). 시장은 바로 이런 재화를 배분하는 데 탁월하다. 문제는 나머지 세 칸, 특히 오른쪽 아래의 공공재(public good) 에서 발생한다.
공공재는 비경합적이면서 동시에 비배제적인 재화다. 국방을 생각해 보자. 국군이 한국을 지킬 때, 내가 그 안보의 혜택을 누린다고 해서 이웃이 누리는 안보가 조금이라도 줄어들지 않는다(비경합성). 또한 세금을 내지 않은 사람이라 해서 그 사람만 안보에서 제외할 방법도 없다(비배제성). 등대, 일기예보, 기초과학 지식, 깨끗한 공기도 마찬가지다. 이런 재화는 일단 공급되면 모두가 함께 누리며, 대가를 치르지 않은 사람을 배제할 수 없다.
바로 이 비배제성이 시장 실패를 낳는다. 사람들이 대가를 치르지 않고도 혜택을 누릴 수 있다면, 합리적인 개인은 스스로 비용을 부담하기보다 남이 공급한 공공재에 슬쩍 편승하려 한다. 이것이 무임승차 문제(free-rider problem) 다. 모두가 무임승차를 노리면 아무도 값을 내지 않고, 그 결과 공공재는 시장에서 전혀 공급되지 않거나 사회적으로 필요한 양보다 심각하게 과소 공급된다. 국방을 자발적 기부에 맡긴다면, 각자는 '내가 안 내도 남들이 내겠지’라고 생각할 것이고, 결국 군대는 유지될 수 없다. 그래서 국방·치안·기초연구·감염병 방역 같은 공공재는 시장이 아니라 정부가 세금을 재원으로 공급한다. 세금은 무임승차를 강제로 차단하는 장치인 셈이다.
공공재의 효율적 공급량을 결정하는 방식도 사적 재화와 다르다. 사적 재화의 시장 수요는 각 가격에서 개인들의 수요량을 ‘수평으로’ 더해 구한다(같은 가격에 각자 얼마씩 사는가). 그러나 공공재는 모두가 같은 양을 함께 소비하므로, 사회적 수요는 각 수량에서 개인들의 지불의사를 ‘수직으로’ 합산해 구한다. 어떤 공원의 특정 규모에 대해 시민 A가 3만원, B가 5만원, C가 2만원의 가치를 느낀다면 그 규모의 사회적 한계편익은 10만원이다. 효율적 공급량은 이렇게 수직 합산한 사회적 한계편익이 공급의 한계비용과 같아지는 지점에서 결정된다. 그러나 각자의 진짜 지불의사를 알아내기 어렵고(사람들은 부담을 피하려 과소 표명한다), 이것이 공공재 공급을 어렵게 만드는 또 하나의 이유다.
표의 오른쪽 위 칸, 곧 공유자원(common resource) 도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공유자원은 배제는 불가능하지만 경합적인 재화다. 공해상의 물고기, 공동 목초지, 지하수, 맑은 공기가 그 예다. 아무나 잡을 수 있고(비배제), 내가 한 마리 더 잡으면 남이 잡을 물고기가 줄어든다(경합적). 이 조합은 공유지의 비극(tragedy of the commons) 이라는 특유의 파국을 낳는다.
비극의 논리는 이렇다. 공동 목초지에 소를 한 마리 더 풀어 놓는 목동은 그 소가 주는 이득을 온전히 자신이 챙긴다. 그러나 그 소가 풀을 뜯어 목초지가 황폐해지는 비용은 모든 목동이 나누어 진다. 즉 이득은 사적이고 비용은 공유된다. 따라서 모든 목동이 계속 소를 늘릴 유인을 갖고, 그 결과 목초지는 회복 불가능하게 파괴된다. 각자가 합리적으로 행동한 결과가 모두의 파멸로 귀결되는 것이다. 이것은 사실 부정적 외부효과의 한 형태다—한 사람의 사용이 다른 모든 사용자에게 비용을 지우기 때문이다. 남획으로 씨가 마른 어장, 고갈된 지하수, 오염된 대기가 모두 이 비극의 실례다. 앞 절에서 본 지구 대기의 과잉 탄소 배출도 결국 전 인류가 공유하는 대기라는 공유자원의 비극인 셈이다.
전통적 해법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재산권을 설정해 공유자원을 사유화하는 것(어장에 개별 어획 할당량을 재산권으로 부여)이고, 다른 하나는 정부가 사용량을 직접 규제하는 것(금어기, 조업 금지, 취수 제한)이다. 그러나 정치학자이자 경제학자인 엘리너 오스트롬은 제3의 길을 보여 주었다.
10.5 정보 비대칭: 감춰진 특성과 감춰진 행동¶
시장 실패의 세 번째 큰 갈래는 거래 당사자들이 서로 다른 정보를 가질 때 발생한다. 완전경쟁 모형은 모두가 상품의 품질을 동일하게 안다고 가정했지만, 현실에서는 한쪽이 다른 쪽보다 결정적인 정보를 더 많이 쥐고 있는 경우가 흔하다. 이런 정보 비대칭(asymmetric information) 은 문제가 발생하는 시점에 따라 두 가지로 나뉜다. 계약 이전에 감춰진 '특성’이 문제가 되는 것이 역선택이고, 계약 이후에 감춰진 '행동’이 문제가 되는 것이 도덕적 해이다.
역선택(adverse selection) 은 거래 전에 한쪽이 상대방이 모르는 상품의 숨은 특성을 알 때 발생한다. 가장 유명한 예가 조지 애컬로프가 1970년 논문에서 분석한 중고차 시장(레몬 시장, market for lemons) 이다. 여기서 '레몬’은 겉은 멀쩡하나 속은 결함투성이인 불량 중고차를 뜻하는 속어다. 판매자는 자기 차가 좋은 차(피치)인지 불량차(레몬)인지 알지만, 구매자는 겉만 보고는 구별할 수 없다. 구매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은 평균적인 품질을 가정하고 그에 맞는 '평균 가격’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여기서 시장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좋은 차를 가진 판매자에게 평균 가격은 너무 낮으므로 그들은 시장에서 발을 뺀다. 그러면 시장에 남는 차의 평균 품질이 떨어지고, 이를 눈치챈 구매자는 가격을 더 낮춘다. 그러면 그나마 남아 있던 조금 나은 차들마저 빠져나가고, 이 악순환이 반복되면 결국 시장에는 최악의 레몬만 남거나 시장 자체가 붕괴한다. 나쁜 상품이 좋은 상품을 몰아내는(bad drives out good) 이 현상이 역선택이다.
역선택은 중고차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보험 시장이 대표적이다. 건강보험을 자유 시장에 맡기면, 자신이 건강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보험료가 아깝다고 여겨 가입하지 않고, 병이 있는 사람일수록 적극적으로 가입한다. 그 결과 가입자 집단의 평균 위험이 높아지고 보험사는 보험료를 올릴 수밖에 없으며, 그러면 그나마 건강한 사람들이 더 빠져나가는 악순환—‘죽음의 소용돌이(death spiral)’—이 벌어진다. 한국이 전 국민 의무 가입 방식의 국민건강보험을 운영하는 것은 바로 이 역선택을 원천 차단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다. 건강한 사람도 아픈 사람도 모두 가입해야 하므로 위험이 전체 인구에 분산되고 소용돌이가 발생하지 않는다.
역선택을 완화하는 시장 자체의 대응도 존재한다. 정보를 가진 쪽이 자신의 우수한 품질을 상대에게 알리려는 행위를 신호(signaling) 라 한다. 마이클 스펜스가 분석한 고전적 예가 교육이다. 능력 있는 구직자는 힘든 학위를 취득함으로써 '나는 이 어려운 과정을 해낼 만큼 유능하다’는 신호를 고용주에게 보낸다. 중고차 판매상이 제공하는 품질 보증(warranty)도 신호다—차에 자신 있는 판매자만이 보증 비용을 감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정보가 없는 쪽이 상대의 숨은 특성을 가려내려는 장치를 선별(screening) 이라 한다. 보험사가 가입자를 위험군별로 나누어 서로 다른 상품(높은 자기부담금 대신 낮은 보험료 등)을 제시하고 가입자가 스스로 자신에게 맞는 것을 고르게 하는 것, 은행이 대출 심사에서 신용등급을 요구하는 것이 선별의 예다. 신호와 선별은 정보 비대칭이라는 시장 실패에 대해 시장이 스스로 발명해 낸 부분적 해법이다.
정보 비대칭의 두 번째 유형인 도덕적 해이(moral hazard) 는 계약이 체결된 '이후’에 한쪽의 행동이 상대에게 감춰질 때 발생한다. 역선택이 '감춰진 특성(hidden characteristics)'의 문제라면, 도덕적 해이는 '감춰진 행동(hidden action)'의 문제다. 핵심은 어떤 행동의 결과를 자신이 온전히 책임지지 않게 되면 사람들이 덜 부주의해진다는 데 있다.
화재보험에 가입한 사람은 가입 전보다 화재 예방에 소홀해지기 쉽다. 손실의 대부분을 보험사가 물어 주기 때문이다. 자동차보험에 든 운전자가 더 난폭하게 운전하고, 실업급여가 후한 나라에서 구직 노력이 줄어들며, 예금이 정부에 의해 보장되는 은행이 더 위험한 대출에 손대는 것도 모두 도덕적 해이의 사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대마불사(too big to fail)'라 여겨진 대형 금융기관들이 무모한 위험을 감수한 것은 도덕적 해이의 거대한 실례로 자주 인용된다—손실이 나면 정부가 구제해 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도덕적 해이를 완화하는 장치는 대체로 ‘행동의 결과를 당사자가 어느 정도 책임지게 만드는’ 방향으로 설계된다. 보험의 자기부담금(deductible)과 공동부담(co-payment)은 손실의 일부를 가입자가 떠안게 해 예방 유인을 되살린다. 고용 계약에서 성과급과 스톡옵션은 노동자의 노력이 관찰되지 않더라도 결과에 대한 보상을 통해 열심히 일할 유인을 준다. 은행에 대한 자기자본 규제는 위험을 감수하는 주주가 손실의 앞부분을 부담하게 만든다. 이 모든 장치의 공통 원리는 감춰진 행동을 완전히 관찰할 수 없더라도, 유인 구조를 재설계해 당사자가 스스로 바람직하게 행동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10.6 정부 실패: 개입의 한계¶
지금까지 우리는 외부효과, 공공재, 정보 비대칭이라는 시장 실패를 살펴보고, 각각에 대해 피구세, 공공 공급, 규제 같은 정부의 교정 수단을 검토했다. 그러나 이 장을 시장 실패의 목록과 그에 대응하는 정부 개입의 처방전으로만 읽는다면, 그것은 절반의 이해에 불과하다. 시장이 실패할 수 있다면, 그것을 고치겠다고 나선 정부 역시 실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정부 실패(government failure) 라 한다.
정부 실패의 첫째 원인은 정보의 한계다. 최적의 피구세를 매기려면 정부가 외부 비용의 정확한 크기를 알아야 하고, 공공재를 효율적으로 공급하려면 시민들의 진짜 지불의사를 알아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이런 정보를 완벽하게 가질 수 없으며, 잘못 설정된 세율이나 규제는 문제를 개선하기는커녕 새로운 왜곡을 낳을 수 있다. 둘째 원인은 유인의 문제다. 정치인과 관료도 결국 자기 이익을 좇는 인간이다. 공공선택이론(public choice theory)은 이들이 반드시 '사회 후생’이 아니라 재선, 예산 확대, 승진 같은 사적 목표를 추구할 수 있음을 지적한다. 셋째, 규제 포획(regulatory capture) 의 위험이 있다. 특정 산업을 규제하도록 세워진 기관이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그 산업의 이익을 대변하게 되는 현상이다. 규제 대상 기업은 조직화된 이해관계와 전문 지식을 갖추고 있어 규제 기관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반면, 규제로 혜택을 볼 다수의 소비자는 흩어져 있어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 그 결과 규제가 소비자가 아니라 업계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왜곡되곤 한다.
이 장의 요약¶
이 장은 '보이지 않는 손’이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지 못하는 상황인 시장 실패를 세 갈래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완전경쟁의 효율성은 가격수용, 명확한 재산권, 대칭적 정보, 제3자 영향의 부재라는 전제 위에 서 있으며, 이 전제가 무너지면 개인의 합리적 선택이 사회적 비효율로 귀결된다.
첫째, 외부효과는 한 주체의 행동이 시장을 거치지 않고 제3자에게 미치는 영향이다. 부정적 외부효과(오염)는 사회적 한계비용이 사적 한계비용을 초과해 시장이 과잉생산하게 만들고, 긍정적 외부효과(백신·교육)는 반대로 과소생산을 낳는다. 우리는 수요 , 사적 비용 , 외부 비용 20인 시장에서 시장 균형 이 사회적 최적 을 초과해 100원의 사중손실을 낳음을 계산했고, 단위당 20원의 피구세가 이를 정확히 교정함을 확인했다. 교정 수단으로는 피구세·보조금 외에, 재산권 설정과 자발적 협상에 기대는 코즈 정리, 그리고 그 실천적 구현인 배출권 거래제를 검토했다.
둘째, 공공재는 비경합적이고 비배제적인 재화로, 무임승차 문제 때문에 시장에서 과소 공급된다. 배제 불가능하되 경합적인 공유자원은 공유지의 비극에 빠지며, 이는 사유화·정부 규제·공동체 자치라는 세 가지 방식으로 다스릴 수 있다.
셋째, 정보 비대칭은 계약 전 감춰진 특성의 문제인 역선택(레몬 시장, 보험의 죽음의 소용돌이)과, 계약 후 감춰진 행동의 문제인 도덕적 해이로 나뉜다. 신호·선별과 자기부담·성과급 같은 유인 설계가 이를 부분적으로 완화한다.
마지막으로, 시장 실패가 곧 정부 개입의 정당화는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정부도 정보의 한계, 잘못된 유인, 규제 포획으로 실패할 수 있으므로, 정책은 언제나 불완전한 대안들 사이의 비교로 접근해야 한다.
핵심 용어¶
| 한국어 | English | 정의 |
|---|---|---|
| 시장 실패 | market failure | 시장이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지 못해 총잉여가 극대화되지 않는 상태 |
| 외부효과 | externality | 한 주체의 행동이 시장 거래를 거치지 않고 제3자에게 미치는 편익 또는 비용 |
| 사적 비용 | private cost | 어떤 행위의 행위자 자신이 직접 부담하는 비용 |
| 외부 비용 | external cost | 어떤 행위가 제3자에게 지우는, 행위자가 부담하지 않는 비용 |
| 사회적 비용 | social cost | 사적 비용과 외부 비용을 합한, 사회 전체가 치르는 비용 |
| 사중손실 | deadweight loss (DWL) | 비효율적 산출량 때문에 사라지는 순사회잉여의 크기 |
| 피구세 | Pigouvian tax | 단위당 외부 비용과 같은 크기로 부과해 외부효과를 내부화하는 세금 |
| 코즈 정리 | Coase theorem | 재산권이 명확하고 거래비용이 작으면 협상으로 효율적 결과에 도달한다는 명제 |
| 거래비용 | transaction cost | 협상·계약·집행에 드는 비용 |
| 배출권 거래제 | emissions trading system | 오염 총량에 상한을 정하고 배출권을 시장에서 거래하게 하는 제도 |
| 공공재 | public good | 비경합적이고 비배제적인 재화 |
| 비경합성 | non-rivalry | 한 사람의 소비가 다른 사람의 소비 가능량을 줄이지 않는 성질 |
| 비배제성 | non-excludability | 대가를 치르지 않은 사람의 소비를 막을 수 없는 성질 |
| 무임승차 | free-rider problem | 비용을 부담하지 않고 공공재의 혜택만 누리려는 행동과 그로 인한 과소 공급 |
| 공유자원 | common resource | 배제는 불가능하나 경합적인 재화 |
| 공유지의 비극 | tragedy of the commons | 공유자원이 과다 사용되어 고갈·파괴되는 현상 |
| 정보 비대칭 | asymmetric information | 거래 당사자 한쪽이 상대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가진 상태 |
| 역선택 | adverse selection | 계약 전 감춰진 특성 때문에 나쁜 상품이 좋은 상품을 몰아내는 현상 |
| 도덕적 해이 | moral hazard | 계약 후 감춰진 행동 때문에 당사자가 부주의해지는 현상 |
| 신호 | signaling | 정보를 가진 쪽이 자신의 우수한 특성을 알리는 행위(예: 학위) |
| 선별 | screening | 정보가 없는 쪽이 상대의 숨은 특성을 가려내는 장치(예: 보험 상품 분리) |
| 정부 실패 | government failure | 정부 개입이 오히려 비효율을 낳거나 문제를 악화시키는 상황 |
| 규제 포획 | regulatory capture | 규제 기관이 규제 대상 산업의 이익을 대변하게 되는 현상 |
연습문제¶
개념 이해
시장 실패의 네 가지 유형을 각각 정의하고, 각 유형에서 완전경쟁의 어떤 전제가 깨지는지 한 문장씩으로 설명하라.
부정적 외부효과와 긍정적 외부효과의 경우, 시장 균형 수량이 사회적 최적 수량보다 각각 많은지 적은지를 밝히고 그 이유를 사회적 한계비용·한계편익 개념으로 설명하라.
공공재의 두 가지 핵심 성질(비경합성·비배제성)을 정의하고, 그중 어느 성질이 무임승차 문제를 직접 유발하는지 논하라.
역선택과 도덕적 해이의 차이를 '문제가 발생하는 시점’과 '감춰지는 것(특성 vs 행동)'의 관점에서 대조하라.
계산
어떤 재화의 수요(=사회적 한계편익)가 , 사적 한계비용이 , 생산 한 단위당 외부 비용이 20원이라 하자. (a) 시장 균형 수량과 가격을 구하라. (b) 사회적 최적 수량을 구하라. (c) 사중손실을 계산하라. (d) 최적을 달성하는 피구세의 크기를 구하라.
본문 [C1]의 모형(, , 외부 비용 20)에서, 만약 정부가 외부 비용을 잘못 추정해 피구세를 20원이 아니라 30원으로 부과했다고 하자. 새로운 시장 균형 수량을 구하고, 이때 발생하는 사중손실을 계산하라(과소생산으로 인한 손실).
세 시민 A, B, C가 어떤 공원 규모 에 대해 각각 , , 의 한계편익을 가진다(단, 각 값이 음수가 되면 0). 공원 공급의 한계비용이 60원으로 일정할 때, 효율적 공원 규모를 구하라. (힌트: 공공재이므로 개별 한계편익을 수직으로 합산한다.)
데이터 해석
본문 [C2]의 로그-로그 산점도에서 소득과 1인당 탄소배출이 양의 관계를 보였다. 한국은 1인당 GDP 약 55,697달러, 1인당 CO2 11.3톤으로 나타났다. 이 좌표가 추세선보다 위에 있다는 사실이 한국 경제의 구조에 대해 시사하는 바를 두 가지 이상 제시하라.
본문 [C3]에 따르면 한국의 1인당 CO2 배출은 1905년 0.00톤에서 2024년 11.29톤으로 증가했다. 이 시계열에서 1997~1998년 구간에 나타난 일시적 감소의 원인을 설명하고, 배출량이 경기 변동에 민감하다는 사실이 탄소중립 정책에 주는 함의를 논하라.
서술
코즈 정리에 따르면 재산권의 초기 배분은 효율적 결과 자체를 바꾸지 않는다. 그럼에도 현실의 배출권 거래제에서 배출권을 무상 배분할지 경매로 판매할지가 격렬한 논쟁이 되는 이유를, 효율과 형평, 그리고 거래비용의 관점에서 논술하라.
"시장이 실패했으므로 정부가 개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왜 논리적 비약인지를 정부 실패, 님비 오류, 오스트롬의 공동체 자치 사례를 근거로 반박하라.
국민건강보험의 전 국민 의무 가입 제도가 역선택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설명하고, 이 제도가 동시에 도덕적 해이(과잉 진료·과잉 이용)를 유발할 가능성과 그에 대한 완화 장치(본인부담금 등)를 함께 논하라.